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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팔함 빼면 시체인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활발하게 신전을 거닐었다.

전과는 다른 점이라면 친구가 늘었다는 것?


얼마 전 나는 로조시 아이리스 대신전에 도착하여 수련 사체로써 훈련을 시작하였다.

대주교님이 일부러 멀리서 날 찾아올 정도라서 그런지 수련 사제는 신전에 기도를 올리고 수련사제의 인을 부여 받음으로써 성력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성력이 대단하여 아이리스님을 모시는 사제로써 알아야할 지식만 잘 마스터하면 얼마 안가 주교에 오르는 것도 금방이라고 하셨다.

이미 난 성력이 주교 급이라고 하시지만 무턱대고 주교에 올리면 신에 대한 불손함과 주교로써 불명예라나?

여튼 주교에 걸맞은 사제가 되기 위해 나는 다른 수련 사제보다 깊게 공부를 시키셨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잔머리의 민시아란 말씀.

공부라는 걸 내가 제대로 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선 난 성력을 운용하는 법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아직 사용 효율은 좋지 않지만 어느 정도 운용이 가능해진 난 이 성력을 전부 머리에 집중시켰다.

그다음은 뻔한 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암기시켰지.


너무 치사하다느니 사기라고 하지 말라.

이것도 다 능력인 법이지 엣헴.

예절은 여전히 꽝이지만 세계사나 가르침 정도는 완벽하단 말씀!


하지만 공부를 아무리 하면 뭐하랴! 그만큼 늘어나는데..

친구도 없이 혼자 공부하려니 너무 적적했던 난 성력의 운용을 연습할 겸 다른 사제들과 같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요청 드렸다.


나의 성력이 아깝게 느껴지신 아돌레스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나는 드디어 신전 밖에 나돌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축복을 부여하고 병세를 보고 치료를 해주었다.

아이리스님을 모시는 우리들은 본래 치유계와 버프에 특화된 사제들이라 그런지 다른 신전보다 아픈 이들이 많이 모였다.

나의 성력을 열심히 부어가며 다른 도시에 찾아가서라도 그들을 치료했고 처음에는 성력의 운용을 핑계로 바깥세상을 구경할 생각만을 했던 내게 점차 사람들을 도우는 보람과 사명을 가져와 주었다.


 "으샤! 오늘도 힘차게! 굳세게!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오늘도 평소랑 다름없이 구석구석 씻은 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오늘도 신전을 뛰었다.

그리고 오늘도 뛰었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끄우~ 천천히 걷기만 하는 신전은 너무 따분해에~"


오늘은 얼마 전 전염병의 조짐이 보인다는 마을로 파견을 나가기로 하고 난 채비를 마쳤다.

전염병에 특효인 약초 다발 약간과 혹시 모를 외상 치료약이나 기타 상비약들도 챙겨 막 출발하려던 때였다.


 '북서쪽에 세계의 운명의 방패를 쥔 자가 왔도다. 그를 맞이하여라.'


이 사실을 수석 사제님께 말씀드렸더니 빠르게 신전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뒤 주교님의 명령이 떨어졌고 우리 사제단은 성기사단을 대동한 채 북서쪽의 관도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오랜만에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게 된 나는 신나있었다. 과연 운명의 방패는 어떤 사람일까?


 "히야~ 얼마 만에 달려보는 거야! 휘이호~"

 "시아 자매, 속도를 좀 줄이세요!!"

 "이잉~ 수석사제니임~ 저는 말 타고 이렇게 빨리 달려보는게 소원이었단 말예요. 오늘만 봐주시면 안 돼요? 네?네?"

 "푸흡, 시아야. 그 말 저번에도 하지 않았나?"

 "이익, 안젤리나 조용히 있어주면 어디 덧나?"


한창 활기차게 노닥거리며 이동하던 우리는 금속음을 포착하였다. 

한 번에 다수의 사람들이 붙은 양 거의 동시에 연달아서 소리가 들려왔다.

언덕을 넘어가려던 무렵 가죽 호구를 장비한 검사가 쓰러지는걸 발견하였다.

그 모습에 무언가 불안을 느낀 난 더욱 말을 재촉하여 우선 그자를 향해 달려갔다.

다른 사제 분들과 기사 분들도 이번엔 아무 말 없이 같이 따라오셨고, 언덕을 넘어 남자를 발견하고 좀 더 올라 반대편이 보이자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건 처음이었다.


 "흐, 으, 아악"

 "꺄아아악!"


이게 다 피다. 이 붉은 것들이..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올라왔다.

아침에 먹은걸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속이 메스껍고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을 주관하는 여신 아이리스님의 사제.

'악인이고 선인이고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끊어선 아니 됨'이 교리로 내려오는 교파.


처음 발견한 남자와 더불어 성기사단의 도움 하에 우린 부상자들을 수습하였다.

제일 급해보였던 처음의 그 남자에게 다가간 난, 남자의 상처를 보고 치료부터 시작하였다.

남자의 등에는 엄청난 화살이 박혀있었고 그을리거나 베인 상처도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치료해 드릴 테니 말은 하지 마시고 숨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내 충고는 개똥으로 알아먹었는지 이 남자는 기어코 말을 했다.


 "저.. 보ㄷ, 저.. 괜...니 ...보단 저분을 먼저.."


헉헉 거리며 신음을 흘려대며 말할 정도면서 왜 말을 하냔 말이다! 겨우 치료되어가는 상처가 더욱 터져버렸다.


 "말 하지 말랬잖아요!? 어서 조용히 해요! 저 여자 분도 치료해드릴 테니 우선 급한 건 당신이라구요?"


하지만 그 말만 하고 기절해버린 모양인지 아무런 대답도 의식도 없었다.


 "으흑, 싫어 이런 거……. 죽지 마요 죽으면 안 돼요!"


먼저 난 신체 전체에 성력을 부어 검상에 의한 출혈을 먼저 치료하였다.

치료하면서 분석한 성분을 가지고 성력으로 인공의 피를 만들어 내어 공급하였고, 치료가 다 끝난 난 화살 하나하나를 조금씩 뽑아가며 치료를 수행하였다.

차라리 검에 베인 상처는 성력을 그냥 부어도 되지만, 화살에 의한 치명상은 치료가 힘들다. 자짓하면 피가 솟아날 수 있고 화살촉이 살과 일체가 될 수도 있다.

조금씩 하나하나 화살을 제거해나갔고 나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남자와 같이 있던 여자는 펑펑 울면서 남자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요. 계속 숨을 쉬세요. 삶을 놓지 말고. 당신의 소중한 저 여자를 위해서라도 사셔야 한다구요! 좀 더 힘을 내!"


눈물이 흐른다. 사실 이 남자는 치료를 마쳐도 살아날지가 미지수였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성력으로 피를 공급했다지만 기본적인 혈액의 생산량이 부족하다면 인공으로 만들어낸 피의 효력이 다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치료해온 사람들과는 너무 달랐다.

힘들고 지치지만 당사자는 더욱 고통스러웠을 거란 생각에 나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난 듯 성기사들 품에 신전으로 운송하고 있었다.

남은 사제 분들이 오셔서 작업을 도와주셨다. 


마지막으로 그을린 상처들을 치료했지만 최종적으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이 남자의 정신력에 달려있다.


 '부디 살아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아이리스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고 힘을 내세요.'


이제야 정신이 든 난 남자와 같이 있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왜 여자를 먼저 치료해 달라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소녀는 팔이 절단되어 있었다. 조금 시일이 지난 듯한, 그렇다고 오래지 않은 절단면이었다. 필시 어떤 팔을 절단해야만 할 사연에 처했으리라.

이 남자는 이 소녀의 팔을 치료하기 위해 보호받기 위해 여기까지 쫓겨 왔을 터다.

그런 남자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잘린 팔을 그것도 잘려나간 부위도 없이 치료하는 건 본래 다른 사제들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파는 생명을 주관하는 여신 아이리스님의 교파. 난 그중에서도 주교급 성력을 가진 사제.

세밀한 성력의 부여량 조절은 힘들지만 그것이 치료를 못하는 건 아니다.

사제의 성법이란 사용해야할 곳에 성력을 보내고 신께 기도를 올린다.

나머지는 신의 뜻에 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만큼의 성력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남은 성력을 다 부어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신께서 안배한 우리를 안내한 그자들이라면 신께서도 이 소녀의 팔을 치료해주실 거라 믿으며.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무리한 성력의 소모로 며칠간 앓아눕긴 했지만 다른 사제 분들께 조금씩 성력을 나누어 받고 대주교님께 너무 무모했다며 꾸지람을 받고나서야 풀려났다.

그제야 한 사실인데 사제는 성력이 곧 생명력, 성력이 바닥이 나면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게 된다고 한다.

성력의 성격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은 생명과의 연관.

사제가 성력을 버리는 때에는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서라고 구원해야할 대상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건 진작 알려주셨어야지.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잖아? 힝.


며칠간 성력을 회복하며 샤를로트 라는 소녀와 지냈다.

대주교님은 특별히 교황 전하께 허락을 받아 나와 그 소녀를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셨다.

잘려나간 팔이 곧바로 정상적으로 돌아올 순 없기 때문에 난 소녀를 전담하면서 신전을 안내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사제가 아니면서 내 또래의 여자 아이를 만나 놀았더니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동쪽에 있을 때도 혼자뿐이었던 나는 완전 살판이 나는 거다. 으헤헤헤.


하지만 샤를은 나보다 오래도록 같이 있어온 남자 곁에 있어야 할 테다. 그편이 샤를 스스로가 원할 테고 남자분도 눈을 떴을 때 좋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같이 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과 다른 점은 병동 근처로 놀이장소가 한정되었다는 점?


오늘도 나는 성력의 도움을 받아 이론을 패스시켰고(슬슬 눈치 채신 기척이지만) 수업이 빨리 끝난 나는 어김없이 병동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요즘 간호하느라 많이 지쳤는지 샤를은 남자의 팔을 베고 잠이 들어있었고 남자는 깨어나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샤를이 얼마나 열심히 간호했는데 천장이나 쳐다보고 있는거람?흥흥.


비록 샤를은 잠들어 있지만 난 남자와도 대화를 하기 위해 병동 안으로 진입! 


 "어, 깨어나셨네요?"


나의 목소리에 그 남자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를 보았으면 대답을 해주어야하는데 아무런 인사도 대답도 없이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난 마음을 추슬렀다.

흠흠.


 "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걸까……."

 "아, 죄송합니다. 저를 구해주신 사제단 분이시군요. 그 검은 머리칼 덕에 알아봤습니다."


아~ 그런 거였나? 하긴 여기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알록달록 다양하고. 검은색이라도 이렇게 검은 경우는 없는 것 같고.


 "헤~ 제 머리카락이 좀 특이하긴 하죠? 이 근방에서 검은 머리카락은 매우 귀하다더라고요."

 "그야 다들 블론드나 적발과 같은 다양한 색이니까요. 동쪽에서 오셨나봐요?"

 "네! 동쪽이 제 고향이에요! 얼마 전에 도착하여 신의 가르침에 대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무언가 울림이 간드러진 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난 사제고 저 남자에겐 샤를이 있는 거 같고~ 


 "잠시 만요. 혹시 수련 사제로 들어오실 때 직접 사제가 되고자 찾아 오신건가요? 아니면 대주교님을 통하여."


음? 그런 건 왜 물어보는지 이해가 안 되네. 말씀드리지 못할 건 없긴 한데.


 "음~ 굳이 말하자면 대주교님을 통해서일까.. 네, 아돌레스 대주교님을 따라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 그럼 저기, 그, 저.."

 "네, 말씀하세요."

 "사제님의 성력이 주교급에 달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혹시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겠사오나.."


혹시 첫 만남 때를 떠올리나 싶어 먼저 궁금해 하는 걸 말씀드렸다.


 "여자 분의 팔이라면 이미 치료해드렸습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그 남잔 상체를 마저 일으켜 샤를의 오른팔을 확인하더니 감격했는지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이런 것이 너무 좋고 내 사제로써 삶의 지탱이 된다. 치료를 받고 새 삶을 찾아낸 소식이라던 지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되고 내가 한 일에 보람이 생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훗날 꼭 보답하겠습니다!"

 "에에..보답이랄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요. 본래 이런 일이 제 직업인걸요."


그리고 여러 가지 놀랄 이야기가 오갔다.

샤를이 사실은 한 나라의 공주였다는 것과 반군에 쫓긴다는 점,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되찾을 방법이 거의 없다는 안타까운 일 등..

사람의 욕심이란.. 너무하다.. 미온 왕국이라면 소문으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왕가가 권력에 사로잡히지 않고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왕국.

하지만 귀족이라는 자들은 결국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생기기 마련인 듯하다.


 "흠,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할까 하네."

 "제안이라 하심은……."

 "실은 우리 수련 사제와 기사들이 말하기를 자네,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적을 해치웠다지?"


아? 그랬던가?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음. 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갑자기 제 몸이 매우 가벼워 졌다는 것과 누군가 제 귀를 간질였던 기억은 있습니다."

 "오오오오오!!"


뭣시?! 그건 내가 신탁을 들었을 때와 같은 게 아닌가?? 그럼 저 사람도 신의 종이신건가?



 "허허, 역시 내 예상대로인가.. 실은 자네가 싸웠던 자들 중 죽은 자는 단 세 명. 아마도 몸이 가벼워지기 전에 베어 넘긴 자들이겠지? 그 이후로 자네에게 공격당한 자들 중 단 한사람도 죽은 자가 없네. 전부 치명상을 비껴나갔어."


히야~ 그 현장에는 나도 가봐서 안다. 엄청난 살육전이었고 실은 세 사람도 치료가 늦어서 죽었을 뿐이다.

여럿이 치고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대단한 일을 이 사람 혼자 했다는 건가?


 "또 자네가 싸웠던 장소에서는 우리의 신이 계셨던 흔적이 있는 점, 우리는 신탁을 받고 그곳으로 이동하던 차였다는 점. 그 만큼 화살에 꼬챙이가 되고도 갑작스러운 몸의 가벼움과 귓가의 속삭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네 목덜미의 아이리스 꽃."

 "아이리스 꽃이라뇨?"


아이리스 꽃이라니? 그건 우리의 상징인데??? 하지만 성기사같진 않으신데..

그전에 보통 성기사들은 아이리스 문양이 목덜미에 새겨지나??

하지만 막스나 새뮤엘은 그런걸 못 봤는데 내가 눈치를 못챈건가.. 나중에 확인해보자!


 "옆 탁상위의 거울로 한번 확인해보게."


재빨리 옆의 탁상에서 거울을 꺼내든 남자는 목덜미를 확인하고 놀라고 있었다.

나도 같이 확인해봤는데 저 위치는 아무리 봐도 거울을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던 사실이라니?? 게다가 색깔도 살짝 붉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건 그리거나 한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그 상징은 자네가 신께 선택되었다는 증거. 게다가 주변 상황이 더욱 확신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 이에 원한다면 자넬 우리의 성기사로 봉하고 공주마마와 함께 신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네. 어떻게 하겠는가?"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어서! 어서 동의해! 나는 샤를이랑 더 놀고 싶단 말야!


 "공주마마는 어떤 식으로 신전에 소속됩니까?"

 "신력은 없고 검술을 하는 것도 아니네. 그렇다고 신의 말씀을 배우며 수련하지는 않을 테고 말이야. 자네가 동의한다면 방랑사제로써 소속되겠지. 물론 겉으로 보이는 신분뿐이지만 말일세."


오오?? 샤를도 사제가 되는거에요?


 "좋습니다. 아이리스 신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허허."


만세!!!! 사랑해요 검사님 알라븅 히히히 샤를아 이제 넌 내꺼닷(?)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전' 미온왕국 골든 로드 기사단 볼프강 F. 리벤저라하며, 이분은 미온왕국의 블랑왕가의 차녀 샤를로트 조슈아 드 미온 블랑 되십니다."

 "나는 아이리스님을 보필하고 있는 아돌레스 드 아이리스 대주교라 하지."

 "전 얼마 전 아돌레스 대주교님을 따라 동방에서 온 수련사제 시아 민이라고 합니다."


잘 지내봐요 볼프강 기사님! 그리고 샤~아~를~!



그 후로 볼프강 기사님은 열심히 재활 치료를 했고 나는 그의 재활치료를 도우랴 샤를의 재활도 도우랴 바빴지만 너무 재밌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평소라면 다른 사제 분들께 시끄럽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을 테지만 요즘은 그런 경고도 없이 지나가면서 지켜보시거나 살짝 웃어주고 가신다.

볼프강은 22살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검을 들어 열둘의 나이에 브론즈 기사단의 수련 기사로 왕궁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왕궁 외곽을 보초하며 교대시간 틈틈이 검술을 연습한 그는 5년 만에 골든 로드 기사단으로 부임되었다고 한다.


검술이라곤 성기사들의 연습밖에 보지 못했던 난 궁금함에 검술을 보여 달랬더니 볼프강 기사님은 몸이 다 나으면 보여주기로 약속하셨다.

어차피 이제 자기는 왕궁 소속이 아니라나 뭐라나 어려운 소리만 잔뜩 했지만 한귀로 흘려보내고 보여준다는 걸로 만족!


수업 시간 외에는 항상 그들과 지냈다. 

어느새 난 볼프강을 오빠라고 불렀고 샤를은 날 언니라 불렀다.

볼프강 오빠는 언제나 우리에게 다정했다. 

머리도 좋아 체스를 두면 항상 오빠에게 지곤 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오빠에게 체스를 배우고 있다. 열심히 배워서 꼭 오빠를 이길 테니까!


 "아, 시간이 다됐네. 오빠,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샤를, 가자!"

 "응, 언니. 볼프강 경도 푹 쉬시기 바라요!"


다만, 샤를은 여전히 오빠에게 경이라 한다는 것?


 "네, 공주님도, 시아도 푹 주무시기 바래."


뭐래 저 애매한 존칭은? 확실히 하라구 확실히!


아! 내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 내일은 좀 더 즐거웠으면!

아니 더 즐거우면 주체 못할지도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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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역의 대륙에는 노예가 존재하지 않고 평민도 귀족도 살기 좋은 나라로 유명한 한 왕국이 있었다.

지금껏 몇 대 째 선왕과 국왕의 정치는 수많은 민생안정을 꾀하였고 상권을 같이 꾀함으로 백성에 대한 귀족의 권력을 줄이면서 귀족의 불만을 잠재우는 걸 꾀하였다.

비록 직접적인 권력은 많이 국왕 파에 묶였지만 그 대가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된 귀족들은 큰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귀족들의 씀씀이에 의해 부가적인 경제 발전과 유통되는 자금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경제는 좋아져갔다.

귀족들이나 가질법한 취미활동도 백성들도 할 수 있었고 수많은 개척마을이나 이주민들이 왕국의 백성이 되기를 자처하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많은 부를 갖더라도 사람의 욕심은 지나칠 수밖에 없었고 귀족들 중에서는 부를 넘어 왕국 전체의 부와 명예를 가지고 싶어 하던, 너무 큰 욕심을 가진 귀족 또한 있기 마련이었다.

결국, 왕국력 117년, 사단은 발생하였다.


 "이런 조무래기는 백날 잡아봐야 의미가 없다. 국왕과 그 식솔들을 먼저 찾아라!"


부귀와 영광을 누리던 왕국의 왕궁에서 짙은 비린내가 흘러나왔다. 푸릇푸릇 싹이 터있던 이파리에는 새벽의 이슬대신 죽은 자의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아침을 준비하느라 곳곳에서 피어올라야 할 음식 냄새 대신 혈향이 올라왔으며 궁을 지키고 있어야 할 기사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수많은 비명소리가 들리고 함성소리가 들린다. 막는 자와 공격하는 자가 대치한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내가 근무를 위해 선임자와 교대하기까지 이런 사단이 발생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도 평화롭게 해가 뜨고 아침에 일어난 왕자 전하와 공주 마마께 문안을 드릴 거라 생각했다.


 "적습이다!! 모두 깨워라, 반란군이 일어났다. 근위병은 왕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어서 무장을 챙겨라!"


아닌 새벽의 외침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 평화롭던 왕국에 반란이라니? 대체 어느 귀족이 불만을 가져 반란을 일으켰단 말인가.

최근 일부 귀족과의 불화가 좀 있었다고는 하지만 반란이 일어날 정도였던가?

나는 재빨리 전하, 마마를 모시러 궁 안으로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 왕국은 백성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내어줄 망정 대외에 보이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 외에는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궁 안에 여러 식솔이 같이 거주하고 계신다.

내가 담당한 이 헤리우스 궁은 국왕의 자제분들이 거주하는 궁이다.

국왕 폐하와 왕비 전하는 다른 담당자가 모실 터이니 난 이분들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정원을 가로질러 내가 도착했을 땐 밖의 소리에 낌새를 챈 왕자 전하께서 공주 마마를 데리러 가시는 길이었고 왕자 전하와 직속 근위병들과 함께 공주 마마의 궁에 들어갔다.

나는 재빨리 그곳의 시녀께 공주 마마의 채비를 급히 준비해오라 이르고 왕자 전하와 함께 공주의 방에서 공주 마마를 모셔왔다.

잠에서 덜 깨시긴 했지만 우리의 상태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공주 마마는 아무 말 없이 약간의 옷가지와 패물을 챙겨 우리와 합류하였다. 


일단은 왕궁이기 때문에 각 궁에는 탈출용 워프 게이트가 있고 항시 대기 중인 마법사가 있다.

우리는 헤리우스 궁의 탈출용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아래로 이동하였다. 막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돌아 경비에게 문을 열게끔 하려던 때.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궁내에 내모자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곳에는 경비병이 쓰러져 있었다. 무언가 일의 잘못됨을 알 수 있었다. 궁내에 내모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순찰중일 터였던 동료나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안이 엄습하였다. 재빨리 위로 올라가 본 나는 저편에서 기사들이 달려오는 걸 보았다.


 "공주와 왕자 전하 일행을 찾아라! 적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릴로 후작가의 문장이다. 우리를 도우러 나온 것 같았다. 재빨리 지원을 요청하려한 그때 주변의 아군을 마법으로 태우며 다가오는 후작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아군이 아니었다. 그들의 적이란 황군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반란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지상으로의 탈출은 글렀다는 걸 깨달은 난 왕자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패를 이용하여 문을 열고 일단 들어가기로 하였다. 

마법 진은 문자 자체에 힘으로도 불안하지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방어를 하다가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다.

이미 위는 도망갈 길이 없는 이상 이곳에서 항전하다가 문자 자체의 힘으로 이동하면 된다. 워프에 필요한 마력은 마석에 충분히 충전되어 있을 테니까.

먼저 마법 진을 점령했을 내모자가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그자를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재빨리 달려 내려간 우리는 막 마법사를 처리하려던 내모자를 발견하여 마법사를 그로부터 구해냈다. 마법사의 안전을 먼저 확인한 뒤 내모자가 누군지 살펴보니 글쎄 공주의 직속 기사단원 중 한명이었다.

견갑의 표식을 보아 들어온 지 몇 년 안 된 신입으로 이번 일을 위해 일부러 심어놓은 기사인 것 같았다.


 "밀피오 경, 몸은 괜찮소?"

 "리벤저 경, 육체라면 야 일찍 와주셔서 문제는 없지만 저자식이 차에 타놓은 프로즌 마나 때문에 마나를 운용할 수가 없소."

 "그럼 문자와 기사들의 운용에 의지해야만 하겠군요."

 "그렇소, 기사들의 마나 운용이라 해도 정해진 위치에 흘려보내기만 해도 작동은 할 터이니 문제는 없지만 정식 마법사가 아닌 만큼 이동은 불안정할 수 있소."


허나 지금 상황으로는 위험부담을 가지고 서라도 왕자 전하와 공주마마를 탈출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단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신 듯 하더니 왕자 전하께 전하와 측근 기사들을 먼저 보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샤를로트' 를 먼저 보내야 합니다. 이 애는 이제 열다섯 살이란 말입니다. 골든 로드 기사단장, 당신의 충정임을 이해합니다. 허나, 전 아직 괜찮으니 이 아이 먼저 보내주세요."

 "하오나.."

 "오..오빠"


놀란 가슴이 이제 좀 진정이 되셨는지 공주 마마께서 예전의 호칭을 그대로 부르셨다.


 "샤를, 오라버니도 곧 뒤따라 갈 터이니 너 먼저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골든 로드 기사단이 함께해줄 것이다. 오라버니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내 실력은 너도 잘 알잖니?"

 "아니야. 아니, 오빠 실력은 나도 잘 알지만 그렇지만, 저들 또한 오빠와 비교할 수 없게 오랫토록 수련한 기사들이잖아? 오빠가 이길리가 없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탈출하자, 응?"

 "샤를로트! 오빠를 믿지 못하는 게냐! 오빠는 어련히 탈출할 테니 먼저 탈출 해다오. 우리 둘다 같이 빠져 나가면 둘다 추격에 잡힐 뿐이다. 여기선 따로 탈출했다가 나중에 합류하는게 좋아. 너와의 첫 여행을 했던 '그 곳'에서 만나자꾸나. 단장, 부탁하오."

 "하아, 왕자님의 고집은 예전부터 황소 고집이셨던 것은 제가 잘 알지요. 골든 로드 기사단은 들으라. 기사단을 셋으로 나누겠다. 기뮤 부단장을 필두로 여하 기사들은 공주 마마와 측근 호위 기사를 따라 먼저 탈출한다. 워프한 지역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마력을 공급하지 않는 기사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라."

 "알겠습니다. 나 기뮤를 필두로 휘하 기사들은 나를 따르라. 공주 마마를 모시고 밖으로 피신한다."

 "예!"


나 또한 기뮤 부단장 휘하였으므로 공주 마마를 지키기 위해 게이트의 변두리에 마나 주입구에 맞춰 올라섰다.


 "기뮤! 준비는 다 되었나? 적군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예, 발동만 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왕자 전하께서 공주 마마를 그윽이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는 뭔가 애처로움이 남아 있었다.

잠시 돌아서던 전하는 기뮤 부단장에게 무언 가를 던지셨다.


 "기뮤 경, 나의 여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전하께서도 옥체 건강하시어 다시 뵐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단장님을 바라본 부단장께서는 목걸이를 공주 마마의 목에 걸어드리며 마나주입을 명하셨다.

난 명에 따라 지정된 양만큼 마나를 부여했고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고 그릴로 후작의 고함소리를 끝으로 우리는 어딘가로 빨려가듯 이동하였다.


아~우~~컹컹


 "으음,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대체..."


난 수풀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같이 이동했던 기사들과 공주 마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안정했던 만큼 불시착을 했던 듯 하다. 충격에 오랜 시간 기절해 있었는지 시간은 어느새 밤이 되어있었다.

나무 같은 데에 몸이 끼어 죽은 동료가 없기를 바라며 마법사에 대한 대처법을 위해 공부했던 마나계측법 이론에 근거한 나는 워프가 불시착을 해도 100미터 안에 대부분 다 도착을 한다는 점에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검이나 바위에 끼어 빼내려는 동료가 보인다. 갑옷이 걸려 나무를 베어내는 동료도 보이고 장구류 한둘 잃게 되기는 했지만 다들 몸은 무사한 듯 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동료들을 확인하며 최우선으로 공주님을 찾아다녔다. 얼마 안가 나는 달빛을 받으며 나무 아래에 서 계신 기절해있는 공주님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공주 마마의 오른팔이 나무를 관통하고 있었다.

내 눈을 믿기를 거부하고 싶었다. 나의 군주시여.. 고통에 의해서인지 아직 기절한 상태에서 깨신 적이 없는 진 모르겠으나 나무에 오른팔이 박힌 팔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 이런.."

 

뒤를 돌아보니 부단장님도 상황을 파악하신 듯 하다. 하나 둘 상황을 수습하던 기사들도 상황을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단장님, 공주 마마의 팔을 꺼낼 방법은 없습니까?"

 "…….시간이 여유롭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도망중인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다. 믿고 맡겨주신 전하께는 죄송하나 공주마마의 팔을 절단하는 수밖에."

 "절단이라뇨? 제가, 제가 어떻게든 나무를 베어보겠습니다 그러니 절단만큼은.."

 "리벤저 경! 정신을 차리라. 지금 우리는 쫒기는 상황이다. 언제 역추적을 하여 우리의 행방을 찾아낼지 모른단 말이다! 차라리 공주 마마의 팔 한쪽으로 마마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면 마마께도 싸게 먹히는 거야."


그럴 순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제발, 제발 기회를 주십시요."

 "시끄럽다. 이봐, 우리는 지금 한시가 급하다. 왕자전하와 일행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도망쳐야한단 말이다!"

 "안됩니다!!"

 "이런 멍청한 자식! 이 자식 끌어내!"


동료들이 나를 잡아 끌어내려고 한다. 재빨리 공주 마마를 붙잡은 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부단장께 몇 대 맞고선 공주마마로부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이정도로 떨어져 나가진 않겠지만 내가 붙잡음으로써 팔에 더욱 크나큰 고통이 생길 공주마마 생각에 나도 모르게 놓았을 지도 모른다.

부단장님의 칼이 번뜩이고, 이내 아래로 내려쳐진다.

고통에 깨어난 공주님은 가슴을 푹 찌르는 비명을 지르다 이내 다시 기절하셨다.


나의 공주님, 사랑하는 나의 공주님. 당신의 옥체를 보전하지 못한 신을 용서하지 마소서..





미온왕국력 117년 5월 17일

최대한 달려 이동하였던 우리는 삼일 째 되는 날에서야 해가 뜨기 전 적당한 터를 잡고 숙면을 취하였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끔 땅굴을 파 은막을 치거나 나무뿌리 속에 숨어들어갔다. 보초는 은막 사이로 때로는 나무위에서 적의 이동이 보이는지 확인하였다.

교대로 그동안의 숙면을 취한 우리는 지도를 펼치고 대략적인 위치를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미온왕국력 117년 5월 21일

지나가는 산짐승을 잡기도 하고 풀도 뜯어가며 동맹국으로 이동하였다.

우선은 동맹국으로 피난을 간 뒤 공주 마마의 팔을 고쳐내는 것이 우선이다.

도중에라도 신전이 보인다면 팔을 고칠 수 있는지 확인해보며 계속 국경을 향해 나아갔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04일

문제가 생겼다.

인근 도시로 정보를 알아보러 간 동료들이 돌아오질 않는다. 

무언가 좋은 정보가 있기를 바라며 며칠 더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07일

며칠 째 동료들이 안 보인다.

근처를 통행하는 주민을 통해 물어보니 웬 기사들이 도시 경비대에 붙잡혀 감금되어 있다고 한다.

그 기사들은 필시 우리 기사가 분명하다.

이 앞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였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08일

위험하다.

결국 우리의 위치가 들통 나 버렸다. 

동료를 잡은 영주는 그릴로 후작에 의해 새로이 부임한 신임영주였다.

당연 우리를 잡아 권세를 더욱 부강하게 하려는 어리석은 귀족 중 한명이었다.

잡힌 기사들의 신분은 확인하고는 일대를 꼼꼼히 수색케 했음이 분명하다.

경비대와 기사단에 기습을 허용하였고 우리는 공주 마마를 보호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17일

하나, 둘 동료들이 죽어나갔다.

공주 마마의 팔을 잘라냈음에도 그들은 공주마마의 혈향을 통해 금세 우리의 뒤를 쫒아왔다.

하나 둘 적을 막으려 자신을 내던졌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겨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벌려놓은 우리에게는 더 이상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나 동결이 풀린 밀피오 자작은 공주 마마로 변하여 부단장과 함께 시간을 벌러 나와 공주마마만 남기고 멀어지셨다.

시간을 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그전에 나의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우선 공주 마마의 잘린 팔부터 해결해야한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24일

결국 체력이 완전히 고갈난 공주 마마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쓰러지셨고 며칠 째 헉, 헉 신음소리만 가득할 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신다.

무리도 아니다. 팔의 절단으로 많은 피를 쏟고 이후로도 제대로 된 식사나 휴식을 갖지 못하였다.

궁에서 편히 계셨을 공주님으로써 이 정도까지 버텨주신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식량을 조달하러 마을에 다녀오니 대 신전들이 모여 있는 로조 시에 이번에 대단한 신성력을 가진 수련사제가 있다고 한다. 

수련 사제 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력이 주교 급에 달했으며 이대로라면 조만간 사제로 부임됨과 동시에 추기경단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있는걸 보아 대단한 수련사제임이 분명하였다.

그 사람을 찾아내면 공주님의 팔쯤은 금세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공주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자 매우 기뻐하셨다.

어서 이 공주 마마를 위하여 로조 시에 도달해야만 한다.




미온왕국력 117년 6월 30일

결국 적에게 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로조 시까지는 고작 반나절 거리도 안 된다.

로조시가 코앞인데 공주님의 팔을 고치진 못할망정 공주님께서 죽임을 당하게 생겼다.

그럴 순 없다. 

나의 목숨도 마저 바쳐서라도 공주님께서 치료를 받게 해드려야 한다.

비록 궁으로 다시 돌아갈 힘이 없어지더라도.



 "꽤나 질긴 녀석이구나. 그러니까 여기 까지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이제 너의 운도 여기서 끝나나 보구나."

 "나의 운이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운명의 실은 잣대여 봐야 아는 거 아닌가?"

 "호오.. 아직 할 말이 많이 있나 보고만.. 그런데 어쩌나.. 우린 바쁨모.."

 "닥쳐! 나 역시 바쁘다. 잔말 말고 덤비지 그래. 나무 위의 녀석들도 치우시지."


나무 위는 혹시나 해서 찔러본 것이지만 그자가 어깨를 으쓱하자 몇 명의 어쌔신이 내려앉았다.


 "의외로 감이 좋은 기사님이셨구먼. 아까워.. 내 부하가 되지 않겠냐고 한다면 당연 거절하겠지..?"

 "당연하지. 나의 주군은 공주님 한분뿐이시다."

 "리벤저 경.."


나의 말에 공주님은 눈물을 글썽이셨다.

여전히 어릴 때나 지금이나 눈물이 많은 공주님이다.

그렇기에 좀 더 공주님을 지켜주고 싶을지 모른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왕자 전하는 어떻게 되었지?"

 "왕자? 아 '전' 왕가의 왕자 말인가? 그자라면 왕성에 잘 가둬두고 있지~"

 "뭐?!"


왕자 전하께서는 공주님을 위해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잡히신 듯 하다.

왕자 전하를 뵐 면목이 사라진다.

전하께서 벌어주신 시간은 결국 공주님께서 잡힐 시간을 조금 연장해주신 것 밖에 되질 않았다.


 "뭐, 곧 죽을지도 모르지만, 거기 공주님의 목에 걸린걸 우리에게 주면 로조 시로 살려 보내 줄 수 도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래놓고 다시 죽이려할 걸 모를 줄 아느냐. 이곳은 공주 마마가 아닌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확신은 없다. 하지만 먼저 간 동료들을 생각한다. 어떻게든 공주님만은 탈출시키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공주님만은.

난 조용히 공주님을 감싸 안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곧바로 공격 태세에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불리하지만 적어도 내가 발목쯤은 잡아둘 수 있겠지.

 

 "공주님, 조용히 제 말만 잘 듣고 있다 따라해 주십시오."

 "네?"

 "조용히 들어만 주세요."


잠시 공주님께서 조금 진정할 시간을 드린 뒤 난 이어서 말씀드렸다.


 "제가 이들의 발목을 최대한 잡아보겠습니다. 공주님은 제가 신호를 보내면 제게 떨어져 로조 시로 뛰어가세요."


순간 공주님이 다시 경직됨을 느낀다. 상대방은 자신들이 한참 유리함을 알기에 그저 느긋하게 다가올 뿐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동안 공주님을 위해 죽어간 기사들과 신하들을 생각해 주십시요. 이것이 마지막 방법입니다."


비록 어리시지만 나이 열다섯이 그리 어림이 아닐 것이다.

약간이나마 상황파악이 되시는 공주님은 입술을 잘근 깨무실 뿐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 적과의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주님을 탈출시키려면 내가 먼저 적의 기세를 끊어야만 한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꽉잡으세요 공주님. 그리고 부디 사셔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아까부터 유심히 봐두었던 적발 사내를 항해 달려 나갔다. 

그자가 이중에서 가장 검 끝이 떨려왔고 방향 또한 로조 시 방향이었다.

적을 해치우는 게 아니라 발목을 잡는 게 목적인 난 그자를 공격하는 척 넘어뜨려 적의 진로를 방해한다.

공격하는 척하면서 내보낸 검으로 그 뒤 빈곳을 파고들었고 디딘 발을 축으로 옆으로 휘둘러 적 한명을 베어 넘겨 거리를 확보했다.

옆에서 피가 솟아올랐지만 공주님은 생각보다 잘 버텨내 주시고 계신다.

적이 주춤한 사이 마저 달려간 나는 약간의 마력을 부여해 궁사수의 활을 끊고 베어 넘겼다. 마법사들의 마법에 스쳐 맞긴 했으나 도망이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방심하다가 허를 찔린 적은 내가 부상을 당해 빠르게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위안삼아 빠르게 나를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등에 간간히 화살이나 마법이 날아왔지만 미리 진로를 읽고 피할 수 있는 것들은 죄 피하거나 검으로 쳐냈다. 


 "크윽"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 해도 한 사람을 지키면서 도망치기란 힘들기에 한두 발씩 데미지는 축적되어갔다. 

적군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발견한 나는 재빨리 공주님을 말에 태워 보내고 적의 발목을 잡기 위해 돌아섰다. 


조금만 더 넘어가면 로조시의 관도다. 관도에서 까지 그들이 대놓고 쫒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의 복병이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오산이었다.

방심은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는 듯 관도로 진입하기 전 공주님의 말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공주님!!"


공주님이 향한 관도 근처의 나무에서 몇 명의 복병이 더 나타났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관도에만 어떻게든 다다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말이 있으니 보다 수월할거라 생각하고 자세히 확인도 하지 않고 예상보다 일찍 공주님을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막 적과 마주치려던 난 적당히 쳐내고 공주님께 달려갔다. 화살이 박혀왔지만 아랑곳 않고 공주님만을 보았다. 


너무 늦는다. 


데미지가 축적되어 생각보다 속도가 안 나온다.

적의 복병의 칼은 빠르다. 공주님이 곧 죽는다.

안 된다. 공주님은 나의 주군, 나의 사랑, 나의 마지막 존재 의의.. 


아아, 신이시여. 공평한 신이시여. 공주님이 무슨 잘못이 있어 왜 저 악한 무리에게 죽임을 당해야합니까.

오히려 벌은 저자들이 받아야 함이 아닙니까.

당신들이 공명정대한 신이시라면 제게 힘을 주소서. 공주님을 지킬 힘을 주소서.

당신들을 복음을 전파할 사제가 필요하다면 저를 쓰소서. 사제들을 지킬 기사가 필요하다면 저를 쓰소서.

저를 어찌 쓰셔도 좋으니 제발 저의 공주님을 살려주소서. 살릴 힘을 주소서.


나의 착각일까. 세상의 시간이 점차 느려져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몸이 가벼워지고 빨리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떤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대의 공주에 대한 사랑은 이미 아노라.

  허나 세상에는 선이 있으면 그만큼 악이 있는 법.

  죽음에 대한 운명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라.

  허나 그대의 공주는 아직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니니 내 너에게 힘을 주마.

  또한 나의 자식을 보내주마.

  그때까지 버텨내면 너와 너의 공주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주님을 내려치려는 검을 쳐내고 그 옆의 적의 팔을 베었다.

그 자리에서 돌아 검을 쳐낸 자의 팔도마저 베어낸 뒤 주변의 복병을 하나 둘 베어내었다.

나는 움직이지만 적의 움직임은 매우 둔했다. 마치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듯 한 기분이었다.


화살과 마법이 날아온다. 너무 느리다.

화살의 경로는 다 보이고 마법은 거북이처럼 기어왔다. 공주님 곁으로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쳐내었고 마법의 진로를 쳐내어 바꾸거나 베어 소멸시켰다.

다가오던 적의 기사들의 검을 든 팔을 베어 넘기고 막 말에 올라타려던 적장의 안장을 끊어내었다.

공주님을 지키기 위함이라지만 저들도 악인이 기전에 한 명의 인간이자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터였다.

상관의 명이나 고용주의 뜻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가려낼 수는 없다.

나에겐 생명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갈 권리는 없다. 이는 신전에서 판단해 죄질에 따라 벌하여 줄 것이다.


로조 시에서 말을 탄 무리가 달려옴이 보였다.

급히 뛰쳐나온 듯 머리가 산발인 자도 있고 의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고 보인다.

하얀 법복을 입은 사제 무리도 보인다.

사제 무리의 선두에 있는 사제는 특이한 사제였다.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머리칼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검고 짙은 머리칼..

그 생각을 끝으로 나의 정신은 끊어져 나갔다.





무언가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이런 기분을 느껴본 때가 언제일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감아쥐었고 서서히 긴장이 풀려가던 나는 다시 깊은 꿈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몇날 며칠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들 때 마다 힘이 없어 누워만 있었던 듯하다.

몸은 전부 완쾌된 듯 아픈곳이 느껴지지 않는다.

팔을 움직이려니 오른팔이 살짝 묵직하였다.

간만에 눈을 뜨려니 잘 떠지지 않는다.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뜰 수 있었다.

일단 뜨인 눈을 마저 뜨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떠올린 눈으로 나의 오른 팔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

공주님께서 나의 간호를 도맡아 해주신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구출된 듯싶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내 앞에 문득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 깨어나셨네요?"


밝은 목소리가 내 귀를 울린다.

방안을 둘러보니 문가에 하얀 법복을 입은 여사제가 한분 보인다.

별다른 표식이 없는 수련 사제였다.


지긋이 바라보니 우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출하러 달려와 준 사제 중 가운데에 있던 검은 머리칼의 사제였다.


 "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걸까……."

 "아, 죄송합니다. 저를 구해주신 사제단 분이시군요. 그 검은 머리칼 덕에 알아봤습니다."

 "헤~ 제 머리카락이 좀 특이하긴 하죠? 이 근방에서 검은 머리카락은 매우 귀하다더라고요."

 "그야 다들 블론드나 적발과 같은 다양한 색이니까요.. 동쪽에서 오셨나봐요?"

 "네! 동쪽이 제 고향이에요! 얼마 전에 도착하여 신의 가르침에 대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오기 전에 들은 소문이 뭐였지? 이번에 로조 시에 얼마 전 대주교가 데려온 수련 사제가 대단한 성력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나?


 "잠시 만요. 혹시 수련 사제로 들어오실 때 직접 사제가 되고자 찾아 오신건가요? 아니면 대주교님을 통하여.."


 "음~ 굳이 말하자면 대주교님을 통해서일까.. 네, 아돌레스 대주교님을 따라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 그럼 저기, 그, 저.."

 "네, 말씀하세요."

 "사제님의 성력이 주교 급에 달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혹시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겠사오나.."

 "여자 분의 팔이라면 이미 치료해드렸습니다."


그 말에 난 공주님이 내 위에서 잠든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체를 일으켜 공주님의 오른팔을 확인하였다.

절단되기 이전과 다름없이 팔이 생겨있었다. 심지어 흔한 흉터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공주님께 팔을 돌려드리고 안전한 곳에 모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훗날 꼭 보답하겠습니다."

 "에에..보답이랄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요. 본래 이런 일이 제 직업인걸요."

 "아닙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이분께서는 보답을 해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분이 누구시기에 그러는 건가요?"

 "이분은.. 블랑가의 차녀 되십니다."


 "블랑가?"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이곳의 정세를 잘 모르는 듯하였다.

 

 "블랑 왕가의 공주라면 얼마 전 유일하게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그 공주로구먼."


이때 병실로 하얀 수염의 대주교 복장을 갖춰 입은 노인이 들어왔다.


 "네?! 왕가요?! 그럼 저 아이가 공주??"

 "'전' 공주겠지. 지금 블랑 왕가는 초토화가 되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내 대에는 재기하기는 힘들게야.."

 

 "저, 전 미온왕국의 골든 로드 기사단의 일원인 리벤저 남작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자네들 이야기니 자네들도 알아야 겠지."

 

거의 한달 넘게 듣지 못했던 미온 왕국의 사정이다. 블랑왕가는 어떻게 되었는지 다들 쉬쉬해서 알 수 없었지만 대주교 급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우선 그릴로 후작은 당분간 정식으로 왕가로 인정받기는 힘들걸 세. 내부에서는 의외로 많은 자들이 후작의 곁에 붙어있더군. 왕의 신물까지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까지는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네."

 "국왕께서는 무사하신 거군요?"

 "그걸 알 수 없다는 게지.. 그 사건 이후로 국왕의 소식은 알 수가 없소. 왕비는 독방에 갇혀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하고.. 왕궁 내에는 왕자일행밖에 없는 듯 하네. 왕자라도 신물이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헤리우스 궁과 왕자를 아무리 수색해도 그 신물은 찾을 수 가 없었다고 하네."

 

분명 마지막에 왕자님이 공주님 목에 걸어주신 것이 그 신물이자 증표일 것이다.


 "재기하기 힘들거라는건.."

 "백성들은 여전히 블랑왕가가 다스리기를 원하고 있어. 하지만 주변 왕국에서는 그들을 도우지 않을 거요."

 "그, 그런.."

 "그야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지 않는가? 주변 왕국에서는 기존에는 공생을 위해 동맹을 맺었을 테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블랑 왕가를 다시 왕위에 올리는 것보다 그릴로 후작의 뒤를 봐주는 척 내정간섭을 하거나 왕국을 뺏는 것이 더 이득이란 말이지.."


그래서인가.. 동맹국으로 찾아가던 중 생각보다 빨리 발각된 이유가..

드러난 샛길은 첩자가 더 잘 안다고 타국의 첩자망 정보를 끌어들인 것이 분명하다.


 "저 공주가 왕의 신물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란 말이지.. 여전히 블랑가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군사력이 너무 약하다네. 나로썬 이대로 조용히 살아가는 걸 추천할 뿐이야.."


하루아침에 공주위에서 박탈당하게 된 공주님..

제가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비록 이제 기사는 아니지만.


 "흠,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할까 하네."

 "제안이라 하심은..."

 "실은 우리 수련 사제와 기사들이 말하기를 자네,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적을 해치웠다지?"

 "음.. 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갑자기 제 몸이 매우 가벼워 졌다는 것과 누군가 제 귀를 간질였던 기억은 있습니다."

 "오오오오오!!"


옆에 있던 수련 사제가 매우 놀라는 눈치이다.


 "허허, 역시 내 예상대로인가.. 실은 자네가 싸웠던 자들 중 죽은 자는 단 세 명. 아마도 몸이 가벼워지기 전에 베어 넘긴 자들이겠지? 그 이후로 자네에게 공격당한 자들 중 단 한사람도 죽은 자가 없네. 전부 치명상을 비껴나갔어."


그 많은 적을 내가 해치웠다는 점, 그리고 전부 치명상이 아니라는 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그 많은 적을 해치우려면 한 타에 치명상을 가하더라도 힘들다.

그런 적을 전부 치명상 하나 없이 해결했다고? 그것도 내가?


 "또 자네가 싸웠던 장소에서는 우리의 신이 계셨던 흔적이 있는 점, 우리는 신탁을 받고 그곳으로 이동하던 차였다는 점. 그 만큼 화살에 꼬챙이가 되고도 갑작스러운 몸의 가벼움과 귓가의 속삭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네 목덜미의 아이리스 꽃."

 "아이리스 꽃이라뇨?"

 "옆 탁상위의 거울로 한번 확인해보게."


재빨리 옆의 탁상에서 거울을 꺼내든 나는 목덜미를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왼쪽 목덜미에는 붉은 은빛의 아이리스 꽃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리 문질러도 본래 피부인양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아이리스라면 생명의 신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그 상징은 자네가 신께 선택되었다는 증거. 게다가 주변 상황이 더욱 확신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지. 이에 원한다면 자넬 우리의 성기사로 봉하고 공주마마와 함께 신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네. 어떻게 하겠는가?"


이건 기회지만 공주님께 왕국을 돌려주려면 이는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왕국은커녕 그 전에 죽어나갈지도 모른다.


 "공주마마는 어떤 식으로 신전에 소속됩니까?"

 "신력은 없고 검술을 하는 것도 아니네. 그렇다고 신의 말씀을 배우며 수련하지는 않을 테고 말이야. 자네가 동의한다면 방랑사제로써 소속되겠지. 물론 겉으로 보이는 신분뿐이지만 말일세."


공주마마도 방랑사제지만 사제로써 등록된다면 나는 사제를 모신다는 명목 하에 왕권을 되찾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주님께는 후에 사정을 잘 말씀드리자.


 "좋습니다. 아이리스 신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허허."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전' 미온왕국 골든 로드 기사단 볼프강 F. 리벤저라 하며, 이분은 미온왕국의 블랑왕가의 차녀 샤를로트 조슈아 드 미온 블랑 되십니다."

 "나는 아이리스님을 보필하고 있는 아돌레스 르 아이리스 대주교라 하지."

 "전 얼마 전 아돌레스 대주교님을 따라 동방에서 온 수련사제 시아 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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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01. 모험의 시작

챕터 02. 바다의 검객


 "여, 마츠루. 요즘은 검술 연습 안하나? 하하"

 "이, 입 다물ㅇ.. 우웩"

 "낄낄, 큭. 배에 오를 때만 해도 폼이란 폼은 다잡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고만, 애송이."


저놈의 애꾸눈.. 남은 눈알도 뽑아버릴까 보다, 으아아아.


배 멀미가 심한 마츠루. 일본 특유의 검을 차고 갑판 구석에서 열심히 토악질을 하는 그는 왜 배를 타고 있는 걸까. 어딜 가길래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배 멀미를 앎에도 배를 올라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건지, 그냥 멀미하는 줄도 모르도 대뜸 올라 탄건지 한ㅂ..윽 드러



탱.

고음의 울림이 발생하며 얇은 무언가가 날아간다. 

검은 도신에 전체적으로 살짝 휜, 전형적인 동방 섬나라의 전통 도다.


 "마츠루 어깨에 힘을 빼라지 않았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 사부님."

 "또 카타나는 검이 아니라 도이다. 너는 너무 찌르는 동작이 많구나. 도는 베어 넘기는데에 특화된 무기. 날의 모양부터 다르다. 이점 명심하고 잘 숙지하도록 하거라."

 "예."

 "잡 생각도 드는 듯 행동이나 반응도 전체적으로 굼뜨고, 쯧. 몇 년간 뭘 배운게냐."

 "..."

 "슬슬 해가 지는듯 하니 몸을 정결히 추스리고 식사준비를 해오너라."

 "수고하셨습니다, 사부님."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일부러 저러시는 걸 알기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내가 나약함을 버리고 도를 연마하여 사부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혹독하게 하시는 걸 알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재빠르게 냇가에서 씻고 미리 쳐둔 어망을 건져올려 이상하게 오늘은 물고기가 별로 잡히지 않았다. 새벽에 한번 더 낚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나마 잡힌 물고기 중 적당한 놈을 두 마리 꺼냈다.

남은 작은 물고기는 풀어주고 두 마리 물고기는 겉에 양념을 잘 발라서 굽고 미소시루(된장국)을 준비했다. 

이제 물고기를 타지 않게 잘 구워서 올리고 미소시루를 떠서 사부님께 식사를 올리면 된다.


아니, 그럴 터였을 텐데...


갑자기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경사 아래에 있는 사부님과 살고 있는 집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밥상을 밀쳐내고 정신없이 달렸다. 달려 내려갔을 땐 이미 집 전체가 타오르고 있었다. 자연적으로는 이렇게 빨리 붙을 수가 없다.

누군가 일부러 노린 것 같다. 대체 왜? 하는 의문은 잠시, 우선 사부님을 찾아 피하는 것이 먼저다. 

 

 "사부님! 어디계세요? 어서 빠져나오세요, 그러다 죽겠어요!"


아무리 불러도 사부님은 대답이 없으셨다.

이미 빠져나오셨는지 안에 갇히신 건지 알 길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수풀이 흔들리더니 사람 몇이 튀어나왔다.

 

 "호오, 가마모토 녀석 제자라는 애송이는 집에 없었나?"


저자가 분명하다. 나와 사부님의 집을 불태우고 사부를 죽게한 자가 분명하다. 죽이고 싶다, 죽여야 한다, 죽일 것이다. 사부님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나의 머리는 점점 차가워져 가고 있다.

평소 사부님과 대련할 때는 되지 않던 것이 사부님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 잡생각을 떨치고 냉정하져 가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복수는 커녕 개죽음 밖에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함정들을 교묘히 이용하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

기회는, 지금이다!


 "하, 네깟 놈이 도망을 치다니. 그래 뭐 죽기전 애교로 어디 재롱이나 한번 보여 보거라. 쫒아라!"


역시 그들은 숙달된 사무라이들이었다. 별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같은데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산속으로 들어가고 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평소 동물들을 잡는데 썼던 함정들로 그들을 유도했다. 내가 어린걸 보고 방심하던 그들은 함정을 밟았다.

하지만 숙련자는 숙련자였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첫번째 함정에서 단 두명. 그나마도 한명은 도중에 밧줄을 잘라 탈출했다. 나에게 유리한 점은 이곳의 지리와 나에 대한 방심인데 둘다 글렀다.

저들은 전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함정을 조심하면서 나를 추격할 것이다. 


 "젠장, 복수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그럴 순 없다. 내가 죽더라도 복수는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썬 한명이라도 동귀어진을 한다면 다행이다. 


 "사부... 죄송합니다. 사부님, 당신의 복수는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부를 죽인 자들을 복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서 흐른다. 최대한 도망치지만 이후로 그들은 자연스레 함정을 피하거나 베어 넘기면서 쫒아왔고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사부, 금방 뒤따라가겠습니다. 사부...사..부?"


저 멀리 많이 본 도검이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니 의상과 얼굴도 눈에 익었다.

머리가 숭숭 빠진 백발에 늘 즐겨 입으시던 파란 배경에 황새 그림의 상의.


 "사부!"


그 소리에 나를 쫒아오던 자들도 놀란 양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고 나는 그 틈에 사부님께 달려갔다.


퍽.


 "예끼, 욘석아. 사부님이라고 부르랬지. 님 자는 집이랑 같이 태워먹었냐?"

 "사부, 아니 사부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그쵸?"


사부님이 살아있다는 생각에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흐른다.


 "허, 참나. 내가 걱정이 되기는 했나 보구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신은 제 하나뿐인 사부이자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걱정은 당연한 겁니다!"


퍽.


 "당신에 사부에 아주 난리구만."

 "윽.. 그 정도는 좀 봐줘도 되지 않습니까? 상황이 상.."


퍽. 


 "그래도 정신 못 차리네."

 "잡담은 그만 하고 죽어줘야겠는데.. 가마모토, 그리고 애송이."


그때 어느새 도착했는지 대장격으로 보였던 그 자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냐, 애송이 우마다."


우마다.

우마다 하야오.

그는 사부가 매일같이 자랑하던 제자이름일 터였다. 그리고 저자가 그 이름이 자신이라며 거론한다. 동명이인인가?

사부님은 씁쓸하듯 바라보며 입을 여셨다.


 "어서오너라, 우마다."

 "호오, 역시 살아 있을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인사를 주고 받을 사이였던가?"

 "여전히 스승에 대한 예의는 쥐꼬리만큼도 없구나. 네 녀석이나 이 녀석이나 내 제자란 것들은.. 쯧"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사부님이 입이 트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은 제자가 저자라니. 대체 왜 사부님을 죽이려 하냔 말이다. 

대체 나와 만나기 전 사부님께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이기에 제일 제자라는 자가 사부님을 죽이려 드는 걸까?


 "마츠루."

 "예, 예, 사부님"

 "바다보다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후지 산처럼 신념이 우뚝 선 검객이 되겠다고 약속하겠느냐?"

 "에?"


퍽.


 "에는 무슨 에야, 이 녀석아. 약속할거냐 말거냐! 바다보다 깊은 심성, 넓은 마음씨, 산처럼 우뚝 선 신념과 하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훌륭한 검객이 되겠다고 약속해라, 어서."

 "약속합니다. 맹세코, 그런 검객이 될 것입니다."


약속하겠다는 나의 다짐을 받자 사부는 품에서 누르스름한 천을 꺼내 내게 넘겨주었다. 

넘겨주려는 순간 우마다는 눈을 번뜩이며 천을 빼앗으려 하였지만 사부님의 검에 막혀 몸을 뒤로 내뺐다. 


 "크윽. 할아범이 힘 하나는 무식하게 오래가네."

 

그러든 말든 사부님께서는 마저 천 조각을 건네며.


 "그 천 쪼가리에 적힌 곳에 가면 내가 일평생 모아둔 보물이 있다. 너의 검술도 진전이 있을게다. 부디 나와의 약속을 잊지 말고 훌륭한 검객이 되거라."

 "사부님 없이 어떻게 그런 검객이 된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부님도 저와 같이 피하세요!"

 "닥쳐라! 내 너의 그 우둔함에 이제 진저리가 나니 썩 꺼져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말 우둔한 녀석이구나."


 "스승과 제자의 도제싸움입니까? 뭐, 저도 한때 당신의 제자였으니 도제싸움이 맞겠네요. 그런데 우린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아서요."

 

순간 우마다의 눈이 번쩍이는 듯 한 느낌이 들더니 한 마리의 야수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이만큼 기다려줬으니 어서 당신과 저 녀석을 죽이고 저 내용물을 보아야겠습니다. 사부."


우마다는 살기를 흩뿌리며 우리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대체 이 까짓게 무엇이기에 사부를 죽이면서까지 가져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너 따위에게 물려줄 건 하나도 없다. 넌 이미 제자로써 실격이야. 파문이다."

 "제자가 아니더라도 물건 이라는건 제 주인을 찾아가야죠. 저런 애송이 실력이 '그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이 녀석은 장차 크게 될 검객이다. 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자질이 있다. 좀 더 멀리 내다 볼 줄은 지금도 모르는구나, 우마다!!"




깊은 산속에 사람의 헐떡이는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그 이후로 열심히 달렸다. 사부가 원하던 일이다. 처음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부탁하셨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부탁하신 일이다. 사부님의 부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선 살아야 한다. 그 일념에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어디까지 달렸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도장의 방향도 알 수 없었다. 사부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렇게 펑펑 울며 난 계속 달렸고, 숨기 좋은 나무뿌리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잠이 들었다.


 "으음."

 

나뭇가지와 잎으로 만들어진 은막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이 햇빛은 은막이 가려주던 아이, 마츠루를 따사로이 감싸 안았다.

하지만 마츠루는 그 빛이 단잠을 방해하자 싫증을 내며 몸부림쳤다.


 "아이씨, 눈부셔."


은막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전보다 더 강렬하다. 해는 점점 떠오르고 결국 마츠루는 잠에 깨어 일어났다.


 "으, 날 좀 내버려둬.."


언제부터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도 잠에서 깬 것 같지가 않다. 

어제의 일은 그저 꿈만 같지만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사부의 마지막 말씀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너의 그 우둔함에 이제 진저리가 나니 썩 꺼져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말 우둔한 녀석이구나.'


내 판단이 빨랐으면 스승님은 죽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도장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바로 도망갔더라면 사부님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사부님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밉고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숨죽여 흐느꼈던 난 문득 품속의 무언가가 느껴져 꺼내보았다.


약간 누리끼리한 세월의 때가 묻은 하얀 천조가리였다. 천을 펼쳐보자 어느 지형이 나왔고 먹색과는 다른 식물의 즙으로 그린 듯 한 진한 녹색 선으로 길처럼 표시가 되어 있었다.

스승님이 마지막에 남겨주신 유산이니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다. 우선 이걸 찾는 게 먼저다. 복수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주위의 인기척을 살핀 난 은막을 걷어내고 나무에 올라 이 주변이 어딘지 부터 파악하였다.


도장 뒤에 있던, 내가 밥을 하던 냇가의 물줄기는 안보이나 낮은 언덕이 희미하게 보이는 걸로 보아 언덕을 넘어서 쭉 달려왔던 듯싶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왔던 길을 반 정도 다시 되짚어 가야한다. 가다가 하야오 일당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이 스승님의 유산으로 추정되는 걸 빼앗기고 나 또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우선 이곳에 머물며 정세를 살피며 기회를 노렸다.



스승님의 유산을 찾아 떠난 지 삼년 째다.

다행히도 하야오 일당은 내가 더욱 멀리 도망간 것으로 판단했는지 숨어 지낸지 며칠만에 그들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찍힌걸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제 저 강을 건너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지도는 한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다다르면 다음 지역에 대한 힌트와 금속의 조각을 얻었다. 그것은 열쇠의 조각의 일부로 보였다.

단순히 쪼개진 조각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게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의 조각이었다. 

조각을 모을 때마다 그곳에는 몇 구절의 문구와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낼 때 마다 나의 실력은 점점 상승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조각은 예리해진 나의 감으로도 찾기 힘들게끔 숨겨져 있었고 조각을 찾기 위해서라도 나는 수련에 수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난 지금 사부님의 복수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어졌다. 누가 안배하였는지 모를 금속 조각과 지도를 헤메는 동안의 깨달음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수련에 의한 사그라짐인지, 세월에 의한 사그라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죽음에 대한 한이 삼 년 만에 사그라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점차 수련의 탓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떨쳐냈다. 잡생각은 다른 생각을 방해할 뿐이다. 사부님이 날 이곳으로 보냈다는 건 나의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내 갈 길을 보내주기 위함일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하야오가 사부님을 배신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소다. 저곳만 가면 모든 이유가 밝혀지겠지.



 "흑윽, 윽. 이깟 것 때문에 사부님이 돌아가신 겁니까? 이것 때문에 당신은 사부를 죽여서라도 가져야만 했단 겁니까?"


동굴 속 거대한 호수 안에서 한 바위 위의 젋은 사내가 울고 있다. 

허리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와카자시와 카타나를 두르고 있고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다.

그는 자신의 검 외에 거대한 노다치였다. 

노다치 치고는 작은 편이나 노다치가 전체적으로 3척 이상 넘는 걸 감안하면 카타나에 비해 훨씬 긴 장검이었다.

지나친 화려함은 없는 실전에 특화되었지만 검집에 들어있음에도 그 자체에서 강한 기가 뿜어져 나왔다.



난 상당한 명검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 검 때문에 사부와 하야오가 다투고 결국 사부가 죽었다는 생각에 이 도를 부러뜨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부는 죽기 직전에도 날 이곳으로 보내셨다. 나에게 이 검을 주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자 좀 더 건너편에 벽속에 박혀있는 작은 함을 발견하였다.

살짝 살짝 비틀어 꺼내보니 열쇠 구멍이 보였다. 이 동굴을 향해 오면서 조립해 두었던 열쇠를 꽂아 넣어보자 많이 녹이 슬었지만 어느 정도 알맞게 들어가자 잠금 쇠가 하나 걸리는 감촉이 들었다.

비틀어 돌리자 잠금쇠가 돌아가면서 자물쇠는 열리고 그 안에는 몇번 훼손된 페이지를 보수했던 양 새 종이와 낡은 종이가 뒤섞여 누덕거리는 한 서책 두권이 있었다.

서책에는 지금과는 한자가 약간 다르나 마츠루가 알고 있는 글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와사키 류 도법'


이름으로는 매우 생소했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니 아니었다. 이 도법에는 내가 잘 아는 도법들이 나왔다.

그동안 사부님과의 대련이 떠올랐다. 가르침이 떠올랐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전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내가 배워 온 도법의 이름을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이와사키류 도법. 그것이 내가 배운 도법이자 나의 사부님의 도법이었다.

첫 번째 책에는 각 도법의 이해에 대해 나와 있었고, 두 번째 책에는 새로운 종류의 도법과 기의 새로운 운용, 도에서 벗어난 글자와 기를 가지고 운용하는 특별한 공방 방법에 대해 나와 있었다.

개중에는 지금의 내 카타나 로는 어려운 기술도 많이 나와 있었다. 이건 마치..


 "노다치..노다와 같은 장도로 가능한 도법이다.."


사부님이 내게 마지막까지 물려주시려 하셨던 도법이다. 두 권의 서책을 잘 갈무리하여 떠나려 했다. 그런데 상자 안에 약간의 틈새가 더 있었다.

와카자시를 뽑아들어 사이에 쑤셔 넣자 천에 둘러싸인 보석 몇 알과 명패, 편지, 작은 책이 한권 더 들어있었다.




 나의 제자, 마츠루 보아라.

 

 마츠루, 니가 이 편지를 보았다는 건 내가 너에게 직접 도법을 전수해주지 못하고 먼저 이곳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내가 너에게 모든 걸 전수해주고 싶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전수하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이렇게 편지로 안배를 하였다.

 이 편지를 쓰면서 밖을 바라보니 오늘도 너는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더구나. 비록 검을 쥔지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열심히 체력을 기른 탓인지 제법이더구나.

 너라면 나의 모든 걸 물려줄 수 있겠다 싶어 편지를 쓴다.


 마츠루, 니가 이곳에 당도하였을 때 내가 너에게 얼마나 가르침을 주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게다.


  '바다보다 깊은 심성, 넓은 마음씨, 산처럼 우뚝 선 신념과 하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훌륭한 검객이 되어라.'

 

 이것은 네가 배우고 내가 가르친 이와사키 류의 도법의 정신이다.

 이와사키 류는 본래 어려운 자들을 악한 세력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도법이다.

 때로는 적 사이에 파고들이 암살을, 때로는 선봉에 서서 어려운 자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도법이다.

 니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편지를 발견하기 전 두 권의 서책과 한 자루의 노다치를 보았을 것이다.

 서책을 보았다면 내가 왜 노다치를 안배해두었는지 알 수 있을게다.

 그 노다치는 이와사키류의 창시자, 이와사키 쇼고가 사용하던 노다치이다.

 그분은 여자임에도 남자에게 굴하지 않는 강한 힘과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도 여자라고 깔보지 못할 그런 여 장수였다.

 어려운 자들의 행태를 보자 못한 이와사키 장수께서는 자신을 거둔 성주를 떠나 어려운자들의 편에 버티어 서계셨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이 도법을 창시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한 가정을 구하려다 함정에 되려 죽음을 당하셨고 그분을 기리는 의미로 지금껏 장문인 들은 이 노다치를 보관하고 이 노다치로 약한 자의 편에 서왔다.


 하지만 나의 안목은 잘못되었는지 하야오를 나의 제자로 삼고 후대 장문인 으로 내정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 또한 실력이 대단했지만 욕심이 과한 사내였다.

 그 욕심을 본 나는 그를 내정하려 했던 당문인의 자리에서 지웠고 그게 격분하였는지 어느새 만들었는지 모를 세력과 함께 나의 제자들을 몰살시켰다.

 나는 그 와중에 제자들을 살리진 못할 망정 그들의 피하라는 말에 말없이 도망쳤고 그들의 목숨을 장벽삼아 도망쳐 살아 남은게지.

 이제 난 나의 먼저 간 제자들의 곁에 갈 수 있을 거 같구나. 제자들을 어떤 면목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츠루, 너를 본 순간 이 아이라면 하는 마지막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와사키 류에 먹칠을 한 내 대에서 도법이 끊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널 얼마나 가르칠지 모르겠으나 장문인 으로써 걸맞은 검객이 되었기를 바라마.

 나의 죽음은 나의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니 복수는 바라지 않으며 한량한 복수심에 너의 명을 단축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야오는 비록 다른 제자들을 죽였던 욕심이 많은 사내지만 그럼에도 제자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마츠루, 너의 갈 길을 향해 가거라. 나의 복수는 필요 없다. 오히려 편안히 갔을 거라 생각한다.

 너를 위해 보석을 몇 개 준비해 두었다. 이것을 팔아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정착하여 약자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너의 앞길에 팔만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흐윽, 예 사부님. 복수는 생각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안배에 따라 약자를 도우며 약자의 편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이 사형들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도록 열심히 지켜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울던 마츠루는 마지막으로 작은 책자를 펼쳐들었다. 


 이와사키 쇼고

 타치바나

 쿠니노미야츠코 사치요

 야마다 켄지

 마츠모토 토마

 마츠모토 코츠키

 요시다 나오키

 우에노 치아키

 모리

 마에다 료코

 우에하라 미사오

 미야츠코 시바

 타카하시 카나타

 마에시로 카즈토

 미야노 마츠히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마모토 겐지로


마지막에 사부님의 이름이 보인다. 이것은 이와사키 류의 역대 장문인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난 무언가 맹세하듯 나의 손끝을 찔러 피로 나의 이름을 남겼다.


 쿠로츠키 마츠루




 "여, 마츠루. 요즘은 검술 연습 안하나? 하하"

 "이, 입 다물ㅇ.. 우웩"

 "낄낄, 큭. 배에 오를 때만 해도 폼이란 폼은 다잡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고만, 애송이."


저놈의 애꾸눈.. 남은 눈알도 뽑아버릴까 보다, 으아아아.

저 망할 자식은 부두에서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녀석이다.

이름까지는 묻진 못했지만 마음이 좀 맞는 듯 하여 여행 중 좋은 말벗이 될 거 같아 말을 걸었는데

정작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고 저 녀석은 나를 한껏 비웃어주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 편지만 아니면 이 배를 탈 리도 없었을 텐데 내가 뱃멀미가 있었을 줄은..으웨엑


그렇게 2년 만에 입항하였던 서역의 대형선은 한참 토악질을 하던 더러운……. 미안.

고통스러워하는 마츠루를 싣고 포말을 일으키며 태평양을 가로질러 서역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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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01. 모험의 시작.

챕터 01. 산골의 소녀


 지구에는 지금껏 수많은 국가가 탄생하고 사라져왔고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으며 이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문명이 탄생하기도 하고 사라져가기도 하였다.

때로는 힘에, 피에 발전을 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지력과 땀에 의해 발전을 해왔다. 

서방에서는 많은 분쟁에 크고 작은 국가가 멸하고 새로운 국가가 들어섰으며 철강과 화약, 공격 마법의 기술이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동방에는 네크로맨시와 비슷한 강령술, 음양력, 도력과 같은 특유의 독자적 기술이 발전하였다.

많은 기술의 발전으로 재력과 권력에 의한 체제는 이전보다 순화되고 능력에 의한 힘이 중시가 되어갔다. 많은 국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수많은 강자들과 학자들을 끌어들여 힘을 길렀고 분란의 불길은 차차 식어 대륙은 차차 안정에 접어들었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가시방석의 안정에.


그런 시기에 동방의 어느 산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녀의 머리와 눈은 동방민족에서도 비교적 진한 흑색의 솜털 같은 머리칼과 깊은 흑색의 눈을 가졌고 피부는 서역의 무역상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이 역시 동방에서는 보기 드문 희고 고운 피부를 가졌다.


 "축하해요, 예쁜 딸아이가 나왔네! 아이구 고와라"


산모 곁에서 씨를 받아준 노파가 아이를 받아 산모의 남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막 태어난 자신의 딸을 보기에 여념이 없는 듯 딸아이 얼굴 구석구석을 잊지 않으려는 듯 자세히 뚫어져라 보고 있다.


 "어서 애 안 씻기고 뭐합니까. 애기는 앞으로 평생 볼 터인데 어서 산모에게도 보이고 애 씻기고 오세요."


노파의 일침에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멍한 눈으로 자신의 아내를 바라본다.


 "여보, 우리 딸이야, 딸! 으흐흑 드디어 애가 태어났다구. 여보, 고마워!"


남자는 애를 아내에게 보이며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내 역시 소리 없이 흐느끼며 아이를 보고 있다.


 "12신과 신마환계의 축복이 이 아이와 함께하기를……."


노파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통일력 21년, 동방의 어느 한 산골에서 여러 축복을 받아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녀의 이름이 바로 민시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민시아!!!!!!!"

 "히익!!"

 "이년이? 거기 안서??"


조용하던 산골에 두 여자의 고함소리가 쟁쟁하다.


 "엄마 같으면 서겠어??" 열심히 발을 놀리며 시아가 외친다.

 "아오, 이 써글년이. 니가 그런다고 내가 못 잡을 줄 알아? 집에 오면 보자~앙?" 엄마는 뛰다 지쳤는지 뛰며 들고 온 밀대(라고 쓰고 방망이 라고 읽는다는 속설도)를 팽개치고 근처 바위에 앉아 소리치며 말했다.

 "헤헤 그럼 저녁에 봐요 엄마!" 나이는 비록 열넷이지만 주변에 친구가 없던 나는 나이에 맞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짙은 웃음을 지으며 뛰어 도망갔다. 하지만 그 도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언가 텅 하고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소녀는


 "악"


하며 뒤로 넘어졌다. 그 소리에 엄마는 재빠르게 다가오다가 부딪힌 대상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멈칫하였다.


 "아돌레스 대주교님.."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내가 부딪힌 사람의 뒤에서 주름이 자자한 하얀색 법복을 입은 한 사제가 나타나며 말하길.


 "소원 신도께서는 그간 강녕하셨소이까? 허허허.."


나는 자신이 부딪힌 성기사로부터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던 참이었는데 대주교라는 말에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넘어질뻔하였다.



 "차린 건 없지만 이거라도 좀 드세요."


엄마 - 소원 - 는 이런 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쿠키와 차를 내오며 말했다.

아돌레스 주교가 한입 물자 잠시 후 시아의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오늘 저희 시아를 데려가시겠다, 이겁니까?"

 "그렇소, 민수 신도여. 시아를 데려가 사제로써 키워보려 하외다. 일찍이 시아는 태어나기 전 여러 신들의 축복을 받아서인지 소원 신도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강한 신성력이 느껴졌소. 점차 자아가 성장하며 스스로 힘을 잃어 약해진 건지 신력을 제어하는 법을 가르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단한 신력이오. 시아는 반드시 사제로써 신들의 의지를 빛내 주어야 할 아이외다."


부모님은 입술을 세게 물거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자기가 부모님 곁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저는 가기 싫어요. 사제가 되기 싫다구요. 계속 엄마 아빠랑 지낼 거란 말예요! 엄마도 뭐라 말 좀 해봐!!"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시아야,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사제로 내정되어 있던 아이란다. 수많은 신들의 계시를 받고 많은 신교의 주교들이 너를 위해 이곳까지 왔다 갔단다."

 "하, 하지만, 하지만"


나는 울상이 되어 부모님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가만히 숨죽여 눈물만 흘릴 뿐 날 데려가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어, 엄마.. 아빠.."


나는 뇌까리듯 부모님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떠나기 싫었지만 부모님 곁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엄마도 아빠도 도와줄 수 없다 는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또 다시는 보기 힘들 거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가 싫었다.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싫다고! 엄마 아빠랑 나랑 셋이서 늘 같이 살기로 했잖아? 날 외톨이로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지금 가면 나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못 볼지도 모르잖아.. 아빠.. 아빠가 그랬잖아? 사제들은 어떻게 되냐고.. 응? 그때 아빠가 그랬잖아.. 자원이 아니라 직접 뽑히는 아이들은

 저 먼 서방에 있는 본당에서 직접 사제수업을 받는다고. 그럼 우리 이제 거의 볼 수 없는 거잖아? 못 보는 거잖아? 응? 응? 나 가기 싫어 아빠.. 엄마 나 가기 싫...!!!"


말이 마저 끝나기 전에 짧은 고음의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뺨이 얼얼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의 왼팔이 오른쪽을 향해 있다.. 지금 엄마가 날.. 내 뺨을 때린 거야..?


 "이년이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르장머리가 바다로 꺼졌구나. 어린 니가 뭘 안다고 나서는 거냐? 다 너 잘되라고 좋은 사람 되라고 보내는 건데 감사합니다. 하고 다녀와야지. 뭘 가기 싫다고 어리광이야?! 니 나이 이제 열넷이야.. 자기 앞 가림을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알고는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싫었을지도 모른다. 꿈이라도 생각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맞은 뺨이 너무나 아프다. 너무 아파서인지 엄마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정신이 그저 멍하다. 모르겠다. 내가 왜 맞아야하는지.

실은 이미 속으로 어느 정도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단 하나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평생에 나를 딱 두 번 때리셨던 어머니다. 산에 불을 지필 뻔 할 때 한번 낮은 나뭇가지에 다리가 꿰뚫렸을 때 한번. 내가 잘못해서 엉뚱한 데에 불을 완전히 지폈다든지 상체에 꿰뚫렸으면

죽을 뻔했던 그런 때에나 날 때리셨던 그런 어머니가 뺨을 내친 것이다. 그것이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난 영혼이 없는 듯 한 눈으로 묵묵히 올라가서 짐을 쌌다. 

그저 모든 걸 체념한 모습으로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책임질 수 없는 말 한마디를 뇌까리며 집을 나섰다. 떠나는걸 알릴 이웃도 없다. 나는 내내 이 산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살았을 뿐이다. 내가 떠난다고 슬퍼할 친구나 이웃같은건 처음부터 없었다. 부모님과는 마지막까지 싸웠다.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성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주교님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아래에 길이 있었고 약간의 성기사들과 함께 마차가 한 대 서있었다. 이것을 타고 항구까지 갈 예정인거 같다. 이제 이것을 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차에 타기 전 집이 있을법한 곳을 향해

크게 절을 올렸다. 주변사람들은 묵묵히 기다려 줄 뿐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지체하면 주변의 다른 분들만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다시 일어나 마차에 올라탔다.


 "더 있지 않아도 되겠느냐?"


아돌레스 대주교님이 지나가듯 말하였다.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미련 없이 빨리 떠나는 게 좋아요. 괜히 더 머물고 싶어져서 미련만 키울 뿐이거든요."


사실은 너무 가기 싫다. 지금이라도 마차에서 내려 도망가고 싶지만 내가 태어날 당시부터 신의 사제로 내정되었다면 신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도망가 봤자 의미가 없다.

마차의 창밖으로 다시 한 번 쳐다볼까 싶어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이왕 떠나야 한다면 빨리 떨쳐내는 것이 좋다. 비록 완전히 떨칠 수도 잊을 수도 없겠지만.


 "어서 가면 안 될까요, 대주교님?"

 "허허, 그냥 아돌레스님이라고 부르거라. 자, 가십시다, 막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호칭을 고쳐주시니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듯하였다. 이동하는 내내 간간히 내가 사제가 되기 위해 어디를 향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좀 여쭤본 기억이 있지만 어느새 잠들어 정신 차려보니 마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이런 이런, 꼬마아가씨. 그새 잠드셨군요?"


음.. 아마 아돌레스님이 막스라고 부른 기사님이셨던 것 같다. 뭐 막스님 외엔 이름을 모르지만.. 잠깐 꼬마?


 "흥! 누구보고 꼬마래요? 전 14살 시아라구요 민.시.아! 아무리 성기사님 이시더라도 꼬마라 하시면 용서할 수 없어요!"

 "하하, 열넷이면 아직 꼬마 아닙니까? 제 딸도 열여섯이지만 꼬마라고 부르는걸요?"

 "이, 이익!"


나 참.. 자기 딸도 꼬마라고 한다는데.. 랄까 열여섯이나 되어서 꼬마라 불리는 딸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여긴 어디지?

내가 화를 내려다가 놀라 주변을 돌아보니 막스님은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이곳은 달의 신전 남원 지부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갈 겁니다."

 "신전..."

 

신전이란다, 신전. 사제가 될 녀석이 뭐 이리 신기한 듯 하나 해도 어려서부터 산에서 살았단 나로서는 모든 게 신기했다. 책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본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건축양식도 많이 다르고 건물 전체에서 빛이 뺨! 하고 나올 거 같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에이 다 구라였나.

그래도 신기한건 신기한 거다. "내 생에 이렇게 큰 건물을 볼 날이 그것도 들어올 날이 얼마나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건물을 계속 이용하실 건데 벌써 놀라시면 어쩌십니까? 시아님이 가실 대신전은 이보다 더 크다구요?"

 "에엑?!"


이보다 더 크댄다. 지금도 대궐 같은데..


 "게다가 이 신전은 이곳 건축양식대로 만들어서 통상 신전하고도 많이 다르구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모든 신전이 소박하니 그 느낌은 재력의 신 을 제외하고 어느 신전에서도 비슷할 겁니다."

 "재력의 신은 많이 다른가보죠?"

 "아무래도 재력의 신은 돈과 재물을 중요히 여기는 곳. 그곳만큼은 웬만한 왕궁 뭇지 않을겁니다. 오죽하면 대신전의 노란 부분은 금이요, 초목은 에메랄드이며, 창문은 다이아라는 말도 있겠습니까? 하하, 그렇다고 믿지는 마세요. 창문은 크리스탈입니다."

 "헤에.. 그러면 초목은 에메랄드가 맞는다는 뜻?"

 "하하하, 말을 잘하시네요. 설마 초목도 에메랄드겠습니까?"


하긴 재력의 신의 본당이라면 웬만한 본당보다도 어마할거 같은데 그곳의 식물을 다 에메랄드로 꾸며놓으면...윽

손님방은 생각보다 외곽에 있는 건지 내가 아직 정식 사제가 아니라 그런 건지 신전의 외곽에 숙소가 있어 잠깐 사이에 방에 도착하였다.

막스 기사님이 자신의 숙소로 가기 전에 내일 점심이 지나서야 출발할거라고 하시니 푹 쉬어도 될 것 같군.


 "으흐~읏. 아이고, 마차를 타고 왔지만서도 뼈마디가 쑤신다, 쑤셔. 내일 홀리 게이트로 바로 항구로 이동한댔으니까 푹 쉬어볼까."


나는 나의 얼마 안 되는 짐 가방을 침대에 던져놓고 창가로 다가갔다.

내가 마차에서 내릴 때 해가 거뭇거뭇 지려고 하고 있더니 지금은 거의 다 져 붉은 노을이 산 능선을 따라 넓게 퍼져있었다.


 "히야~"


노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집에서도 노을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트인대서 보는 노을과 산속에서 보는 노을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멋진데~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걸.. 나 참 눈물이 이렇게 많았나? 히힛"


나는 분명 노을을 보고 감동했는데 내 볼을 타고 눈물이 하나 둘 흐르고 있었다.

왜지 난 노을이 멋지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집따위, 가족 따위. 이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는데..흑"


멈추려고 했지만 오히려 눈물은 더욱 흘러내린다.


 "멈춰, 멈추란 말이야, 으흑. 멈춰줘, 제발.."



 "으윽, 아이고, 머리야.."

하도 울었더니 머리가 뽀사질거 같았다. 울다가 잠들면 다음날 또 운다던데(누가?) 그게 이거였나..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창을 보니 해가 아주 중천에 떠있었다. 대충 12시는 넘어간 거 같은데…….12시를 넘어?!

그때, 쾅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 아가씨, 어서 일어나세요. 점심은 진작 지났다구요."

 "자, 자, 잠깐만요 머리 좀 빗고요!"


재빠르게 빗을 뽑아들고 머리를 빗어나갔다. 울다가 잠든 덕에 머리가 떡이 되서 잘 빗겨지지 않았지만 내 머리가 어깨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지 않아 겨우 게이트에 올라탔다.

전에 머리가 나무에 걸린다고 잘라내지 않았으면 머리 빗느라 더 늦었을지도…….


 "허허, 잠을 제대로 못 잤니? 얼굴이 푸석푸석하구나."


헉, 여자의 보물 중 하나가 피부인데.


 "ㅎ,호호호. 아니에요. 푹 잘 잤는걸요."

 "맞습니다. 너무 푹 자서 이렇게 됐죠."


뭣시.. 옆에서 거드는 막스 기사님을 살포시 째려봐주는 걸로 일단 넘어갔다. 제일 급한 건 항구로 출발하는 거니까..


 "그럼 다 오신 거 맞죠? 급하니 일단 게이트를 가동하지만 낮이라서 좀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낮인 것과 밤인 것이 차이가 있는 건가??

하지만 그 의문을 풀 새도 없이 나는 이미 이동하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쪽엔 생전 보도 못한 거대한 배가 줄지어 서있고 한쪽엔 나도 몇 번 본 작은 배들이 있었다. 그 배들이 떠있는 물은 파란 물이었는데 아무리 쳐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표면은 반짝이며 빛났고 옆에서는 사람들이 물고기 같은걸 팔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고기에 물고기가 아닌 신기한 것들도 잔뜩 팔고 있었다.


 "히야~ 호수인가요? 엄청나게 넓네요!"

 "푸하하하하핫. 호수래, 호수!"

 "에?? 왜 웃어요?"

 "푸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크크킄."


울상이 되어 물어보지만 왜 아무도 안 알려주는 거냐구.


 "우, 우, 웃지마요. 호수가 아니면 뭔데요? 알려줘야 알거 아냐!"

 "아이고.. 헉, 헉. 웃다가 지치기도 오랜만이네. 저건 바다란다."


막스 성기사님이 고통스런 얼굴을 하며 알려주셨지만 그게 뭐댜;


 "???? 뭐죠, 그게?"

 "……. 어이, 새뮤엘. 세계 지도 좀 가져와봐."


새뮤얼이라는 분이 막스님보다 아래인지 군말 않고 세계지도라는 걸 가져다주었다.


 "자, 봐.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란다."

 "에게. 겨우 이것밖에 안되나요??"


내가 다닌 곳도 엄청 넓은데 이건 너무 작잖은가!


 "이건 한눈에 볼 수 있게 줄여놓은 것이고 실은 엄청나게 크지."


지도에 살짝 점을 찍고 나서 말을 이으셨다.


 "여기 이 점 보이니? 이점이 네가 돌아다녔던 지역 전체일 게다."

 "네에?"


아니 이 작은 게 그 큰 땅이라고라고라? 이게 그 정도면 이 땅들은 대체 얼마나 큰 거야…….


 "크크큭, 역시 놀라는구먼. 그리고 이 커다란 땅들은 주위에 약간 푸른 부분은 전부 물인데 이 물 아래에도 땅이 있지."

 "이렇게 넓은 곳이 다 물이라고요? 세상에.. 그럼 제가 본 저 물이.."

 "그렇지. 저게 바로 여기란다."


그러면서 부산 이라고 쓰여 있는 지역의 물을 짚어주셨다.

내가 보는 게 겨우 이 일부일 뿐이라니.. 이 거대한 물을 호수라고 표현했으니 웃을 만도 하시겠다. 으, 부끄러워..


 "그리고 이 거대한 물을 우리는 바다라고 부른단다. 여기는 물의 특성도 달라서 산속의 호수와는 다른 물고기들이 살고 있지."


아, 그래서 물고기들이 처음 보는 것들뿐이었구나..


 "뭐, 물론 지역에 따라서도 종류가 달라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성기사님이 이어서 말씀해주셨다.

아마 이름이 새뮤얼이라고 하셨지? 


 "마치 산속에서 산나물이 자라는 위치가 다른 것과 같은 건가요?"


난 역시 천생 산사람이 분명해. 비교를 꼭 산으로 하다니.


 "하하, 역시 산에서만 살아왔다더니 산에 비교를 하는구나?"

 "윽, 저도 아니까 어서 알려줘요!"


풉 하고 웃으시고는 알려주시는데 왜 웃는 거람! 


 "푸흡, 흠흠. 그래, 맞아. 사실 이곳에 있는 해산물들은, 아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해산물이라고 한단다. 여튼, 이것들은 우리도 모르는 게 많아. 여긴 우리 고향도 아니고 우리고 처음 와봤으니까"


이어서 막스 성기사님이 받아서 이야기 해주셨다.


 "알고 있던 거라고 종류가 다양하니까 말이다. 하하"


그러고 보니 버섯도 같은 거라도 이름이 조금씩 다르고 특징도 달랐던 거 같기도 하고.. 윽 또 산에 비유를..


 "아이리스 신전 분들, 이제 출항해야하니 어서 올라타십시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배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저 사람은 선원이라고 부르지. 바다를 항해할 때 저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데 도움을 준단다."

 "헤에.. 저 배도 결국 사람 힘으로 조정해야하는군요."

 "좋은 배는 자동으로 되지만, 그것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움직여야하니까."

 "그런데 아직 대주교님이 안 오셨는데.. "


대주교님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구경 다녀오라면서 신전에 볼일을 보러 가셔서 곁에 안 계신다.


 "대주교님은 내가 모시고 오마. 먼저 새뮤엘과 승선하고 있거라."


승선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렸지만 대충 배에 타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새뮤엘 기사님과 배에 올랐다.

배에 올라서 보는 경치는 아래에서 보는 경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마치 산에서 나무를 타 올랐을 때 보던 그런 경치처럼..


 "허허, 시아 먼저 타고 있었구먼. 이제 출발하면 되겠어."


어느새 올라오신 대주교님. 언제오신거지.. 발도 빠르셔라.


 "자. 출발합세, 게일 선장."

 "예, 대주교님."


게일이라고 불린 선장이 대답하였다. 장이 붙은걸 보니 이 배의 대장 같은 거라 여겼다.


 "출항한다! 닻을 올리고 돛을 반만 펼쳐라. 항구를 벗어나면 닻을 전부 펼친다. 망루는 전방의 안전을 확인하고 조타수는 항구를 벗어나면 4시 방향으로 천천히 선회한다."


잠시 후 서서히 배가 출발하였고 항구가 멀어져 감이 눈에 보였다.

결국 난 이 땅을 벗어나게 되었다. 더 이상 부모님을 보기는 힘들겠지 이제.. 이 땅도.. 

점점 멀어져 안 보이는 땅이 마치 내 기억 속에서 과거가 멀어져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추억과 부모님,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안개가 끼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부터 앞날은 내가 개척해 나가야한다. 더 이상 의존할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다.

그렇게 배는 항구를 떠나 서방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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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0 연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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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그것은 어느 겨울날의

Author : 민시아1(나즈나)

Blog : nazun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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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습작 시작 //-->


프롤로그.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푸른 하늘에 종다리가 하나 둘 삐르르 삐르르 날아오르고 있다.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길 몇 번. 나무에서 내려 새하얀 눈이 깔린 밭에 내려 앉아 부리를 쫀다. 제 먹거리를 찾았는지 부리로 하나 떡하니 물었더라.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지 연신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그러던 종다리가 어느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보아하니 밭에 서있던 올망졸망하니 귀엽게 생긴 아이 곁의 식량을 발견했나보다. 먹고는 싶은데 가까이는 못 가겠는지 가만히 보고만 있다.


 "응? 종달새잖아??" 


종다리는 이곳에서 종달새라고도 불리우는 새이다. 흔히 참새라고도 부르는 듯 하지만 그것은 분류의 이름일 뿐..


 "아빠, 여기 종달새가 있어요!"


하며 소녀는 아버지를 찾아 달려간다. 이때다 하고 종달새는 날아와 재빠르게 먹을 것을 캐치, 소녀가 오기 전에 다시 날아갔다.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을 때는 이미 떠난 뒤.


 "아빠 여기 봐봐요.. 어라" 소녀가 종다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지만 떠난 새가 그 자리에 있을 리가. 소녀가 실망하자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은 달래듯이 말한다.

 "하하 종달새가 낯간지러서 그냥 가버렸나 보구나. 이 애비가 무서웠나?"

 "히잉.. 나랑 놀아주면 좋았을 텐데……."


소녀는 많이 실망한 표정이다. 주변에 다른 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에서 소녀와 소녀의 가족만 살고 있는 것 같다. 많이 심심했던 때에 종다리가 나타나 기뻤을 소녀는 종다리가 사라지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언니도 이 새를 만나고 있을까요?"


소녀는 아버질 바라보며 물어본다. 여전히 실망한 모습 그대로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이 소녀를 더 귀엽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럼~ 네 언니도 이 종다리를 보며 우리 딸을 생각하고 있을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냥 그리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막연히 그리워하는 표정이지만 그보다는 그 그리움에 진한 슬픔이 잠시 묻어나온다. 하지만 소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말만을 듣고 실망했던 표정을 풀고는 하늘을 향해 외친다.


 "종달새야, 우리 언니에게 안부 전해주렴! 언니 동생 아람이가 부모님 곁에서 잘 크고 있다고! 이제 편식도 안하고 나도 언니처럼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그렇게 전해주렴!"

 "예끼, 욘석아. 그렇게 소리 지르면 동물들에게 민폐에요, 민폐."


딱, 하고 알밤을 맞는 아람이.


 "하, 하지만. 언니에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는걸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언니는 아람이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거란다. 종달새들이 보고 들은걸 잘 전해줄게야."


소녀의 말을 듣고 때렸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슬픔은 여전히 간간히 남아서 나타나고 있다.


 "이만 밥을 먹자꾸나. 오늘은 엄마가 닭고기 스튜를 끓여준다지 않았니? 식기 전에 어여 가자꾸나."

 "아, 맞다, 스튜! 헤헤. 아빠, 어서 와요. 식겠어요."

 "아이고, 아빠 늙어서 빨리 못가, 욘석아. 그렇게 빨리 가면 어뜩하냐."

 "피. 빨리 가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래요."


아버지는 아람이 에게 끌려가며 너털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여전히 깊은 슬픔을 간직한 깊이를 알 수 있는 검은 눈.


그것은 어느 겨울날, 한 소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떠나간 지 3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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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he Only NEET Thing to do. written by 나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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