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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그것은 어느 겨울날의

Ep 01. 모험의 시작 Cpt 02. 바다의 검객

에피소드 01. 모험의 시작

챕터 02. 바다의 검객


 "여, 마츠루. 요즘은 검술 연습 안하나? 하하"

 "이, 입 다물ㅇ.. 우웩"

 "낄낄, 큭. 배에 오를 때만 해도 폼이란 폼은 다잡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고만, 애송이."


저놈의 애꾸눈.. 남은 눈알도 뽑아버릴까 보다, 으아아아.


배 멀미가 심한 마츠루. 일본 특유의 검을 차고 갑판 구석에서 열심히 토악질을 하는 그는 왜 배를 타고 있는 걸까. 어딜 가길래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배 멀미를 앎에도 배를 올라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건지, 그냥 멀미하는 줄도 모르도 대뜸 올라 탄건지 한ㅂ..윽 드러



탱.

고음의 울림이 발생하며 얇은 무언가가 날아간다. 

검은 도신에 전체적으로 살짝 휜, 전형적인 동방 섬나라의 전통 도다.


 "마츠루 어깨에 힘을 빼라지 않았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 사부님."

 "또 카타나는 검이 아니라 도이다. 너는 너무 찌르는 동작이 많구나. 도는 베어 넘기는데에 특화된 무기. 날의 모양부터 다르다. 이점 명심하고 잘 숙지하도록 하거라."

 "예."

 "잡 생각도 드는 듯 행동이나 반응도 전체적으로 굼뜨고, 쯧. 몇 년간 뭘 배운게냐."

 "..."

 "슬슬 해가 지는듯 하니 몸을 정결히 추스리고 식사준비를 해오너라."

 "수고하셨습니다, 사부님."


말씀은 저렇게 하시지만 일부러 저러시는 걸 알기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내가 나약함을 버리고 도를 연마하여 사부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혹독하게 하시는 걸 알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재빠르게 냇가에서 씻고 미리 쳐둔 어망을 건져올려 이상하게 오늘은 물고기가 별로 잡히지 않았다. 새벽에 한번 더 낚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나마 잡힌 물고기 중 적당한 놈을 두 마리 꺼냈다.

남은 작은 물고기는 풀어주고 두 마리 물고기는 겉에 양념을 잘 발라서 굽고 미소시루(된장국)을 준비했다. 

이제 물고기를 타지 않게 잘 구워서 올리고 미소시루를 떠서 사부님께 식사를 올리면 된다.


아니, 그럴 터였을 텐데...


갑자기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경사 아래에 있는 사부님과 살고 있는 집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밥상을 밀쳐내고 정신없이 달렸다. 달려 내려갔을 땐 이미 집 전체가 타오르고 있었다. 자연적으로는 이렇게 빨리 붙을 수가 없다.

누군가 일부러 노린 것 같다. 대체 왜? 하는 의문은 잠시, 우선 사부님을 찾아 피하는 것이 먼저다. 

 

 "사부님! 어디계세요? 어서 빠져나오세요, 그러다 죽겠어요!"


아무리 불러도 사부님은 대답이 없으셨다.

이미 빠져나오셨는지 안에 갇히신 건지 알 길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수풀이 흔들리더니 사람 몇이 튀어나왔다.

 

 "호오, 가마모토 녀석 제자라는 애송이는 집에 없었나?"


저자가 분명하다. 나와 사부님의 집을 불태우고 사부를 죽게한 자가 분명하다. 죽이고 싶다, 죽여야 한다, 죽일 것이다. 사부님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나의 머리는 점점 차가워져 가고 있다.

평소 사부님과 대련할 때는 되지 않던 것이 사부님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 잡생각을 떨치고 냉정하져 가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복수는 커녕 개죽음 밖에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함정들을 교묘히 이용하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

기회는, 지금이다!


 "하, 네깟 놈이 도망을 치다니. 그래 뭐 죽기전 애교로 어디 재롱이나 한번 보여 보거라. 쫒아라!"


역시 그들은 숙달된 사무라이들이었다. 별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같은데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산속으로 들어가고 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평소 동물들을 잡는데 썼던 함정들로 그들을 유도했다. 내가 어린걸 보고 방심하던 그들은 함정을 밟았다.

하지만 숙련자는 숙련자였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첫번째 함정에서 단 두명. 그나마도 한명은 도중에 밧줄을 잘라 탈출했다. 나에게 유리한 점은 이곳의 지리와 나에 대한 방심인데 둘다 글렀다.

저들은 전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함정을 조심하면서 나를 추격할 것이다. 


 "젠장, 복수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그럴 순 없다. 내가 죽더라도 복수는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썬 한명이라도 동귀어진을 한다면 다행이다. 


 "사부... 죄송합니다. 사부님, 당신의 복수는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부를 죽인 자들을 복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서 흐른다. 최대한 도망치지만 이후로 그들은 자연스레 함정을 피하거나 베어 넘기면서 쫒아왔고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사부, 금방 뒤따라가겠습니다. 사부...사..부?"


저 멀리 많이 본 도검이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니 의상과 얼굴도 눈에 익었다.

머리가 숭숭 빠진 백발에 늘 즐겨 입으시던 파란 배경에 황새 그림의 상의.


 "사부!"


그 소리에 나를 쫒아오던 자들도 놀란 양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고 나는 그 틈에 사부님께 달려갔다.


퍽.


 "예끼, 욘석아. 사부님이라고 부르랬지. 님 자는 집이랑 같이 태워먹었냐?"

 "사부, 아니 사부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그쵸?"


사부님이 살아있다는 생각에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흐른다.


 "허, 참나. 내가 걱정이 되기는 했나 보구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신은 제 하나뿐인 사부이자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걱정은 당연한 겁니다!"


퍽.


 "당신에 사부에 아주 난리구만."

 "윽.. 그 정도는 좀 봐줘도 되지 않습니까? 상황이 상.."


퍽. 


 "그래도 정신 못 차리네."

 "잡담은 그만 하고 죽어줘야겠는데.. 가마모토, 그리고 애송이."


그때 어느새 도착했는지 대장격으로 보였던 그 자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냐, 애송이 우마다."


우마다.

우마다 하야오.

그는 사부가 매일같이 자랑하던 제자이름일 터였다. 그리고 저자가 그 이름이 자신이라며 거론한다. 동명이인인가?

사부님은 씁쓸하듯 바라보며 입을 여셨다.


 "어서오너라, 우마다."

 "호오, 역시 살아 있을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인사를 주고 받을 사이였던가?"

 "여전히 스승에 대한 예의는 쥐꼬리만큼도 없구나. 네 녀석이나 이 녀석이나 내 제자란 것들은.. 쯧"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사부님이 입이 트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은 제자가 저자라니. 대체 왜 사부님을 죽이려 하냔 말이다. 

대체 나와 만나기 전 사부님께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이기에 제일 제자라는 자가 사부님을 죽이려 드는 걸까?


 "마츠루."

 "예, 예, 사부님"

 "바다보다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후지 산처럼 신념이 우뚝 선 검객이 되겠다고 약속하겠느냐?"

 "에?"


퍽.


 "에는 무슨 에야, 이 녀석아. 약속할거냐 말거냐! 바다보다 깊은 심성, 넓은 마음씨, 산처럼 우뚝 선 신념과 하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훌륭한 검객이 되겠다고 약속해라, 어서."

 "약속합니다. 맹세코, 그런 검객이 될 것입니다."


약속하겠다는 나의 다짐을 받자 사부는 품에서 누르스름한 천을 꺼내 내게 넘겨주었다. 

넘겨주려는 순간 우마다는 눈을 번뜩이며 천을 빼앗으려 하였지만 사부님의 검에 막혀 몸을 뒤로 내뺐다. 


 "크윽. 할아범이 힘 하나는 무식하게 오래가네."

 

그러든 말든 사부님께서는 마저 천 조각을 건네며.


 "그 천 쪼가리에 적힌 곳에 가면 내가 일평생 모아둔 보물이 있다. 너의 검술도 진전이 있을게다. 부디 나와의 약속을 잊지 말고 훌륭한 검객이 되거라."

 "사부님 없이 어떻게 그런 검객이 된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부님도 저와 같이 피하세요!"

 "닥쳐라! 내 너의 그 우둔함에 이제 진저리가 나니 썩 꺼져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말 우둔한 녀석이구나."


 "스승과 제자의 도제싸움입니까? 뭐, 저도 한때 당신의 제자였으니 도제싸움이 맞겠네요. 그런데 우린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아서요."

 

순간 우마다의 눈이 번쩍이는 듯 한 느낌이 들더니 한 마리의 야수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이만큼 기다려줬으니 어서 당신과 저 녀석을 죽이고 저 내용물을 보아야겠습니다. 사부."


우마다는 살기를 흩뿌리며 우리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대체 이 까짓게 무엇이기에 사부를 죽이면서까지 가져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너 따위에게 물려줄 건 하나도 없다. 넌 이미 제자로써 실격이야. 파문이다."

 "제자가 아니더라도 물건 이라는건 제 주인을 찾아가야죠. 저런 애송이 실력이 '그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이 녀석은 장차 크게 될 검객이다. 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자질이 있다. 좀 더 멀리 내다 볼 줄은 지금도 모르는구나, 우마다!!"




깊은 산속에 사람의 헐떡이는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그 이후로 열심히 달렸다. 사부가 원하던 일이다. 처음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부탁하셨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부탁하신 일이다. 사부님의 부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선 살아야 한다. 그 일념에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어디까지 달렸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도장의 방향도 알 수 없었다. 사부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렇게 펑펑 울며 난 계속 달렸고, 숨기 좋은 나무뿌리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잠이 들었다.


 "으음."

 

나뭇가지와 잎으로 만들어진 은막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이 햇빛은 은막이 가려주던 아이, 마츠루를 따사로이 감싸 안았다.

하지만 마츠루는 그 빛이 단잠을 방해하자 싫증을 내며 몸부림쳤다.


 "아이씨, 눈부셔."


은막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전보다 더 강렬하다. 해는 점점 떠오르고 결국 마츠루는 잠에 깨어 일어났다.


 "으, 날 좀 내버려둬.."


언제부터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도 잠에서 깬 것 같지가 않다. 

어제의 일은 그저 꿈만 같지만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사부의 마지막 말씀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너의 그 우둔함에 이제 진저리가 나니 썩 꺼져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말 우둔한 녀석이구나.'


내 판단이 빨랐으면 스승님은 죽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도장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바로 도망갔더라면 사부님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사부님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밉고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숨죽여 흐느꼈던 난 문득 품속의 무언가가 느껴져 꺼내보았다.


약간 누리끼리한 세월의 때가 묻은 하얀 천조가리였다. 천을 펼쳐보자 어느 지형이 나왔고 먹색과는 다른 식물의 즙으로 그린 듯 한 진한 녹색 선으로 길처럼 표시가 되어 있었다.

스승님이 마지막에 남겨주신 유산이니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다. 우선 이걸 찾는 게 먼저다. 복수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주위의 인기척을 살핀 난 은막을 걷어내고 나무에 올라 이 주변이 어딘지 부터 파악하였다.


도장 뒤에 있던, 내가 밥을 하던 냇가의 물줄기는 안보이나 낮은 언덕이 희미하게 보이는 걸로 보아 언덕을 넘어서 쭉 달려왔던 듯싶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왔던 길을 반 정도 다시 되짚어 가야한다. 가다가 하야오 일당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이 스승님의 유산으로 추정되는 걸 빼앗기고 나 또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우선 이곳에 머물며 정세를 살피며 기회를 노렸다.



스승님의 유산을 찾아 떠난 지 삼년 째다.

다행히도 하야오 일당은 내가 더욱 멀리 도망간 것으로 판단했는지 숨어 지낸지 며칠만에 그들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찍힌걸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제 저 강을 건너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지도는 한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다다르면 다음 지역에 대한 힌트와 금속의 조각을 얻었다. 그것은 열쇠의 조각의 일부로 보였다.

단순히 쪼개진 조각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게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의 조각이었다. 

조각을 모을 때마다 그곳에는 몇 구절의 문구와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낼 때 마다 나의 실력은 점점 상승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조각은 예리해진 나의 감으로도 찾기 힘들게끔 숨겨져 있었고 조각을 찾기 위해서라도 나는 수련에 수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난 지금 사부님의 복수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어졌다. 누가 안배하였는지 모를 금속 조각과 지도를 헤메는 동안의 깨달음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수련에 의한 사그라짐인지, 세월에 의한 사그라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죽음에 대한 한이 삼 년 만에 사그라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점차 수련의 탓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떨쳐냈다. 잡생각은 다른 생각을 방해할 뿐이다. 사부님이 날 이곳으로 보냈다는 건 나의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내 갈 길을 보내주기 위함일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하야오가 사부님을 배신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소다. 저곳만 가면 모든 이유가 밝혀지겠지.



 "흑윽, 윽. 이깟 것 때문에 사부님이 돌아가신 겁니까? 이것 때문에 당신은 사부를 죽여서라도 가져야만 했단 겁니까?"


동굴 속 거대한 호수 안에서 한 바위 위의 젋은 사내가 울고 있다. 

허리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와카자시와 카타나를 두르고 있고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다.

그는 자신의 검 외에 거대한 노다치였다. 

노다치 치고는 작은 편이나 노다치가 전체적으로 3척 이상 넘는 걸 감안하면 카타나에 비해 훨씬 긴 장검이었다.

지나친 화려함은 없는 실전에 특화되었지만 검집에 들어있음에도 그 자체에서 강한 기가 뿜어져 나왔다.



난 상당한 명검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 검 때문에 사부와 하야오가 다투고 결국 사부가 죽었다는 생각에 이 도를 부러뜨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부는 죽기 직전에도 날 이곳으로 보내셨다. 나에게 이 검을 주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자 좀 더 건너편에 벽속에 박혀있는 작은 함을 발견하였다.

살짝 살짝 비틀어 꺼내보니 열쇠 구멍이 보였다. 이 동굴을 향해 오면서 조립해 두었던 열쇠를 꽂아 넣어보자 많이 녹이 슬었지만 어느 정도 알맞게 들어가자 잠금 쇠가 하나 걸리는 감촉이 들었다.

비틀어 돌리자 잠금쇠가 돌아가면서 자물쇠는 열리고 그 안에는 몇번 훼손된 페이지를 보수했던 양 새 종이와 낡은 종이가 뒤섞여 누덕거리는 한 서책 두권이 있었다.

서책에는 지금과는 한자가 약간 다르나 마츠루가 알고 있는 글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와사키 류 도법'


이름으로는 매우 생소했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니 아니었다. 이 도법에는 내가 잘 아는 도법들이 나왔다.

그동안 사부님과의 대련이 떠올랐다. 가르침이 떠올랐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전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내가 배워 온 도법의 이름을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이와사키류 도법. 그것이 내가 배운 도법이자 나의 사부님의 도법이었다.

첫 번째 책에는 각 도법의 이해에 대해 나와 있었고, 두 번째 책에는 새로운 종류의 도법과 기의 새로운 운용, 도에서 벗어난 글자와 기를 가지고 운용하는 특별한 공방 방법에 대해 나와 있었다.

개중에는 지금의 내 카타나 로는 어려운 기술도 많이 나와 있었다. 이건 마치..


 "노다치..노다와 같은 장도로 가능한 도법이다.."


사부님이 내게 마지막까지 물려주시려 하셨던 도법이다. 두 권의 서책을 잘 갈무리하여 떠나려 했다. 그런데 상자 안에 약간의 틈새가 더 있었다.

와카자시를 뽑아들어 사이에 쑤셔 넣자 천에 둘러싸인 보석 몇 알과 명패, 편지, 작은 책이 한권 더 들어있었다.




 나의 제자, 마츠루 보아라.

 

 마츠루, 니가 이 편지를 보았다는 건 내가 너에게 직접 도법을 전수해주지 못하고 먼저 이곳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내가 너에게 모든 걸 전수해주고 싶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전수하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이렇게 편지로 안배를 하였다.

 이 편지를 쓰면서 밖을 바라보니 오늘도 너는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더구나. 비록 검을 쥔지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열심히 체력을 기른 탓인지 제법이더구나.

 너라면 나의 모든 걸 물려줄 수 있겠다 싶어 편지를 쓴다.


 마츠루, 니가 이곳에 당도하였을 때 내가 너에게 얼마나 가르침을 주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게다.


  '바다보다 깊은 심성, 넓은 마음씨, 산처럼 우뚝 선 신념과 하늘처럼 높은 기상을 가진 훌륭한 검객이 되어라.'

 

 이것은 네가 배우고 내가 가르친 이와사키 류의 도법의 정신이다.

 이와사키 류는 본래 어려운 자들을 악한 세력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도법이다.

 때로는 적 사이에 파고들이 암살을, 때로는 선봉에 서서 어려운 자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도법이다.

 니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편지를 발견하기 전 두 권의 서책과 한 자루의 노다치를 보았을 것이다.

 서책을 보았다면 내가 왜 노다치를 안배해두었는지 알 수 있을게다.

 그 노다치는 이와사키류의 창시자, 이와사키 쇼고가 사용하던 노다치이다.

 그분은 여자임에도 남자에게 굴하지 않는 강한 힘과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도 여자라고 깔보지 못할 그런 여 장수였다.

 어려운 자들의 행태를 보자 못한 이와사키 장수께서는 자신을 거둔 성주를 떠나 어려운자들의 편에 버티어 서계셨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이 도법을 창시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한 가정을 구하려다 함정에 되려 죽음을 당하셨고 그분을 기리는 의미로 지금껏 장문인 들은 이 노다치를 보관하고 이 노다치로 약한 자의 편에 서왔다.


 하지만 나의 안목은 잘못되었는지 하야오를 나의 제자로 삼고 후대 장문인 으로 내정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 또한 실력이 대단했지만 욕심이 과한 사내였다.

 그 욕심을 본 나는 그를 내정하려 했던 당문인의 자리에서 지웠고 그게 격분하였는지 어느새 만들었는지 모를 세력과 함께 나의 제자들을 몰살시켰다.

 나는 그 와중에 제자들을 살리진 못할 망정 그들의 피하라는 말에 말없이 도망쳤고 그들의 목숨을 장벽삼아 도망쳐 살아 남은게지.

 이제 난 나의 먼저 간 제자들의 곁에 갈 수 있을 거 같구나. 제자들을 어떤 면목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츠루, 너를 본 순간 이 아이라면 하는 마지막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와사키 류에 먹칠을 한 내 대에서 도법이 끊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내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널 얼마나 가르칠지 모르겠으나 장문인 으로써 걸맞은 검객이 되었기를 바라마.

 나의 죽음은 나의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니 복수는 바라지 않으며 한량한 복수심에 너의 명을 단축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야오는 비록 다른 제자들을 죽였던 욕심이 많은 사내지만 그럼에도 제자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마츠루, 너의 갈 길을 향해 가거라. 나의 복수는 필요 없다. 오히려 편안히 갔을 거라 생각한다.

 너를 위해 보석을 몇 개 준비해 두었다. 이것을 팔아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정착하여 약자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너의 앞길에 팔만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흐윽, 예 사부님. 복수는 생각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안배에 따라 약자를 도우며 약자의 편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이 사형들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도록 열심히 지켜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울던 마츠루는 마지막으로 작은 책자를 펼쳐들었다. 


 이와사키 쇼고

 타치바나

 쿠니노미야츠코 사치요

 야마다 켄지

 마츠모토 토마

 마츠모토 코츠키

 요시다 나오키

 우에노 치아키

 모리

 마에다 료코

 우에하라 미사오

 미야츠코 시바

 타카하시 카나타

 마에시로 카즈토

 미야노 마츠히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마모토 겐지로


마지막에 사부님의 이름이 보인다. 이것은 이와사키 류의 역대 장문인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난 무언가 맹세하듯 나의 손끝을 찔러 피로 나의 이름을 남겼다.


 쿠로츠키 마츠루




 "여, 마츠루. 요즘은 검술 연습 안하나? 하하"

 "이, 입 다물ㅇ.. 우웩"

 "낄낄, 큭. 배에 오를 때만 해도 폼이란 폼은 다잡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고만, 애송이."


저놈의 애꾸눈.. 남은 눈알도 뽑아버릴까 보다, 으아아아.

저 망할 자식은 부두에서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녀석이다.

이름까지는 묻진 못했지만 마음이 좀 맞는 듯 하여 여행 중 좋은 말벗이 될 거 같아 말을 걸었는데

정작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고 저 녀석은 나를 한껏 비웃어주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 편지만 아니면 이 배를 탈 리도 없었을 텐데 내가 뱃멀미가 있었을 줄은..으웨엑


그렇게 2년 만에 입항하였던 서역의 대형선은 한참 토악질을 하던 더러운……. 미안.

고통스러워하는 마츠루를 싣고 포말을 일으키며 태평양을 가로질러 서역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