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가지/일기

190529,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언젠가

문득 돌이켜보니 너무 많은 기억을 잃고 살았다.

바빠서인지, 스트레스인지 며칠 전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소중한 추억들 하나하나 결국 기억하지 못할까봐, 갑작스레 두려워 과거 내용도 정리하고 하나 둘 일기를 써볼까 한다.

 

우선 오늘 떠오른 기억을 남겨본다.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다.

아마 일기장을 잘 찾아보면 일기장에도 이 내용이 있을 것같은데.

시대는 2002년 보다는 이전일 것이다.

경암동에 살던 때니까 어쩌면 유치원 시절일 수도 있겠다.

시간은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컴퓨터는 거실에 있었다.

거실에는 마당이 보이는 큰 베란다가 있었고 김치 냉장고인지 일반 냉장고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냉장고가 있었다.

바깥 베란다와 거실 사이 유리 미닫이 문이 있었는데 냉장고와 나란한 방향으로 컴퓨터가 놓여 있고 바닥엔 카펫이 있었다.

당시에는 게임 CD 라는 것이 흔히 돌아다니던 시절이다. 

특히 특정 게임만 담겨있는 시디가 아닌, 여러 게임을 복제해 넣은 시디가 잡지 부록으로도 제공될 정도로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게임이지만 당시 내가 정말 즐겨하던 게임이 있었다.

아케이드 류 아니면 자동차 관련 게임 이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당시 내가 쓰던 펜티엄 4 컴퓨터의 시디롬은 시디롬이 열릴 때 약간 반탄력이 있는 제품이었는데 부모님께 1시간 게임 허락을 받고 열심히 게임하려고 시디를 넣으려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디가 있었고, 내가 새로 넣으려는건 1개 게임만 담긴 다른 시디였다.

그날따라 시디롬이 반탄력이 세 들어있던 시디가 밖으로 튕겨져 나와버렸다.

그 당시 책상 위치가 카펫때문에 의자를 빼기가 협소해 나는 다소 신경질 나 아무 생각 없이 의자를 뒤로 밀었는데 빠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내 눈 앞에 보인건 카펫 위, 바퀴달린 의자 아래에 깔린, 부러진 시디 한 장이었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세상을 잃은 듯 한동안 가만히 쳐다만 본 것같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걸 알면서도 괜히 만지작 거리고 테이프로도 붙여본 기억이 난다.

결국 시디만 만지작 거리다가 허락받은 게임 시간이 다 지났다.

그제서야 닭똥같은 눈물이 하나 둘 흐른 기억이 난다.

한동안 컴퓨터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사소하면서 이 나이 먹도록 그만큼 허탈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잊지 못하고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눈만 감아도 당시 상황이 떠오르고 감정이입이 될 정도다.

 

처음으로 내 소중한 것을 잃고, 다시 찾지도 못하고, 기억 저편으로 보낸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날 정확히 어떤 생각까지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 즈음해서 내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랄까 소장욕? 같은게 많이 죽지 않았나 싶다.

사고 싶어서 탐내긴 해도 한번 내 손에 들어오면 굳이 소유권 주장을 하질 않게 되었으니까.

없어지면 없어진듯, 남이 가져가면 그러려니.